가정을 주제로 지난해에 이어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 제14차 정기총회는 10월 24일 투표를 거쳐 최종 보고서를 통과시키고, 25일 교황이 집전하는 폐막미사로 3주간에 걸친 토론을 모두 마쳤다. 94개 항목으로 구성된 최종 보고서는 교황에게 제출됐고, 교황은 이를 고려하되, 교황 자신의 사목적 전망과 의지를 바탕으로 하는 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를 발표하게 된다.
진보와 보수?
이번 시노드 결과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은 시노드에서의 격렬한 토론의 장을 진보 대 보수의 힘겨루기로 여기는 듯했다. “교황 절반의 승리…”(한국일보), “보수파에 끝내 진 ‘교황의 파격’”(서울신문), “가톨릭 진보-보수 균열 드러낸 시노드…”(연합뉴스), “이혼 품고 동성애는 내친 시노드-보수 거대한 벽에 교황이 졌다”(중앙일보) 등등의 제목들은 이러한 시각을 반증한다.
더욱이 시노드 관련 언론 보도들은 대체로 이번 시노드 결과를 교황이 보수파에 밀린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즉, 이혼 후 사회 재혼한 이들이 혼인무효 판결을 거치지 않고도 영성체를 포함한 성사와 신앙생활, 교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절반이 승리’이다. 하지만 동성애 등에 관해서는 여전히 교회의 입장 변화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일반 언론들은 교황이 ‘밀렸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분석들은 지난 3주 동안 로마에서 상당히 첨예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며 진행된 시노드의 토론들을 볼 때 타당한 점이 없지 않다. 13명의 고위 성직자가 교황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 시노드의 운영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대목에서는 힘겨루기와 로비의 분위기도 엿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시노드에 대한 평가는 시노드의 목적과 취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원의와 회의 진행 방식, 교회 안에 살아계신 성령의 움직임 등에 대한 이해와 고려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교리 재확인, 자비의 문 열어 둬
분명히 이번 시노드는 예상된 대로,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교리와 윤리적인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재확인했다. 하지만 동시에, 비록 강력하고 완고한 반대가 있었지만, 하느님의 자비와 연결되는 어떠한 문도 닫지 않았다.
그리고 열려진 가능성들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 시노드에서 주어지지 않은 대답들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손에 맡겨졌다. 사실상 이번 주교시노드는 혼인과 가정의 현실 문제들에 대해서, 대답을 하기보다는 문제를 더 많이 제기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완고한 입장에 대해서, 시노드 폐막까지 조용히 지켜보던 교황은 마지막 순간에 강하게 질타했다. 교황은 24일 투표 후 회기 마지막 자리에서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팔매질 할 ‘죽은 돌’로 만들어버리려는 이들”을 지적했다. 이러한 발언은 교리와 전통의 수호라는 미명 아래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 완고한 성향의 주교와 추기경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한 반발과 저항 속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담은 보고서가 대의원들의 합의를 통해 확정됐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오스트리아 크리스토프 쉔보른 추기경은 “최종 보고서는 (주교들이) 합의한 문서”라며, 힘들고 어려운 토론의 과정을 거쳐 (만장일치는 아니지만 3분의 2 이상의 다수결로) 의견의 일치를 본 합의의 성과물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합의는 극적이었다. 수많은 다른 이슈들은 거의 이론이 없었지만, 이혼 후 사회 재혼 신자들의 교회 생활에의 참여에 대한 3개 항목은 간신히 찬성 3분의 2를 넘었다. 특히 그 중 하나인 제80항은 참석 대의원주교 265명의 3분의 2(177표)를 단 한 표 넘어서는 178표로 통과됐다. 나머지 두 항목 역시 찬성 187표, 190표를 기록했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식별’
이혼 후 사회 재혼자에 대한 영성체 허용의 문제를 다룬 세 번째 회기는 격렬했다. 교황청 최고위 성직자 3명을 포함한 상당수의 주교들은 그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최종 문헌에서 배제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주교들은 합의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보고서에 포함시켰고, 공은 교황에게로 넘어갔다.
문제에 대한 시노드의 접근에서 핵심 단어는 ‘식별’(discernment)이라고 쇤보른 추기경은 설명했다. 시노드는 가정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엄청난 주의’를 기울였고, 상황은 너무나 다양해서 ‘예’ 또는 ‘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다. 결국 “각 사례를 식별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것이 시노드의 결론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수회원으로서, 식별이 강조되는 이냐시오의 영성 수련 방법에 익숙하다는 점은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혼을 한 가정들의 상황은 다양하며, 그 당사자들이 져야 할 비극에 대한 책임의 몫 역시 다양하다. 따라서, 사례별로 다른 상황을 정확하게 식별해 서로 다른 수준과 차원으로 영성체를 포함한 성사와 교회 생활에의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노드는 이를 위해서 ‘내적 법정’(internal forum)을 제안했다. 이혼 후 사회 재혼한 이들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의 상황을 인식”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사제들은 이 내적 법정의 양심 성찰 과정을 돕도록 제안하고 있다.
특별히 세 번째 회기에서 독일어권 그룹이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의견 일치를 본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이 그룹에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최고의 신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영성체 허용으로 가는 ‘참회의 여정’(penitential path)을 제안한 발터 카스퍼 추기경과 이를 강하게 반대했던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게르하르트 뮐러 추기경이 포함된다. 신앙과 교리에 대한 교황청 최고의 관리이자 카스퍼 추기경과 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던 신앙교리성 장관이 이를 수용해 합의된 그룹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은 엄청난 무게를 갖는다.
교황과 가정의 승리, 완고함의 패배
그러면 시노드에서의 승리자는 누구였을까? ‘인사이드 바티칸’의 저자로 미국 가톨릭 독립언론인 NCR의 바티칸 전문가인 예수회 토마스 리즈 신부는 일반 언론의 어법을 빌어, 첫 번째 승리자는 초안작성위원회이고 두 번째는 상대를 비난하기보다는 ‘끝장토론’을 벌여 합의에 도달한 독일어 그룹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한 세 번째 승리자는 완전한 개방성 위에서 끝없는 의견 교환을 지향했던 프란치스코 교황,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전 세계 주교들의 일치된 관심의 대상이 된 모든 가톨릭 신자 가정들이다.
누가 패배했는가? 그는 자비보다는 율법을 강조하고 아무것도 변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들이 시노드에서 분명히 패배했다고 말한다. 어떠한 변화의 가능성도 배제하려고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투표를 통해 문헌이 통과되면서 패배는 기정사실화됐다.
리즈 신부가 “애매한 합의”(consensus in ambiguity)라고 했듯이 시노드는 제기된 문제들의 해답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교황에게 떠넘겼다. 하지만, 이번 시노드는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작동돼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크게 성공적이다. 교회의 존재 양식을 드러내는 표지로서의 ‘공동 합의성’(synodality)의 모범을 이번 시노드는 3주 동안 집중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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