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신약성경에서 ‘환난’은 많은 경우에 박해를 의미합니다. 박해 중에도 자신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낸 이들에 대한 표현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그들의 옷을 깨끗하게 빨았다는 것 역시 이들이 구원되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요한 묵시록 7장의 내용은 ‘선택받은 이들’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들이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밝히는 이 내용은 요즘 특히 신천지교와 깊이 관련되어 있어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십사만 사천 명은 숫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습니다. 이스라엘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선택받은 이들은 하느님을 믿고 그 뜻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구약성경의 열두 지파와 신약성경의 열두 사도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 묵시록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박해 안에서도 자신들의 믿음을 지킨 이들이 구원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 내용은 오늘 복음 말씀과도 잘 어울립니다. 마태오 복음은 오늘 진복팔단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하느님의 선물을 받으리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처음과 마지막 선언은 마음이 가난한 이들, 그리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이들이 하늘나라를 차지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복음에서는 종종 세상에서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현실과 하느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인간적인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은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나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생각은 요한 1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라는 표현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말합니다.
신앙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와는 다른 삶을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따르지 않고 복음의 가치를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 법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신앙인입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세상을 향해 하느님의 정의를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을 향해 이웃을 사랑하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재물의 가치가 모든 것보다 앞서는 요즘,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이 중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나 혼자만의 믿음은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믿어서 하느님의 축복을 기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이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이유는 분명 아닙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에 앞서 우리 안에서 먼저 실천해 나가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실천이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고 그렇게 해서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를 조금씩 일깨우는 것이 신앙인들의,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 역시 이러한 삶을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삼았습니다. 우리 역시도 이러한 삶을 위해 더 노력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의 모든 성인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가르침입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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