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과부입니다. 과부는 특별히 성경 안에서 사회적인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다교 안에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성인 남자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여자들과 아이들은 스스로 권한을 가지지 못하고 아버지나 남편을 통해서만 사회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과부나 고아는 더 이상 종교, 사회적인 보호 아래에 놓이지 못한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에서도 이것을 표현합니다.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사렙타의 과부와 엘리야 예언자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는 기근이라는 벌을 가져옵니다. 이런 때에 하느님은 엘리야 예언자를 시돈의 사렙타에 있는 과부, 곧 이방인 중의 한 명을 찾아가도록 합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만난 과부에게 물과 빵을 청합니다. 그러자 과부는 이렇게 답합니다.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그녀의 말 안에서 기근의 이유가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이방인이었지만 이미 하느님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엘리야 예언자의 이 이야기는 구약성경 시대에 이미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언자의 말을 따른 이 여인의 집안에는 오랫동안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지치고 억눌린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실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시고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 역시 돌보시리라는 것 역시 우리의 믿음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처럼 그것이 빠른 결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분명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는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우쳐 줍니다. 봉헌은 남들과 비교해서 적고 많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어떻게 하느님과 공유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비록 다른 이들의 눈에 보잘것없이 보이더라도 자신의 것을 기꺼이 하느님께 내어놓는 것이라면 그것이 가장 값진 봉헌일 것입니다.
과부의 헌금과 비교되는 이야기 또한 복음에서 듣게 됩니다. 인사받기와 윗자리에 앉는 것을 즐기고 어려운 이들의 가산을 빼앗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하는 율법학자들에 대한 경고는 과부의 헌금과 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들이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필요한 것은 진실함입니다. 다른 이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앞에 선다는 것은 나와 하느님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마음은 그렇지 못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거짓된 행동을 하는 것은 가장 나쁜 모습입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그 모습 그대로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내게 주어진 것이 크다면 그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가졌고 가지지 못한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하느님을 믿고 나의 것을 기꺼이 봉헌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바라는 하느님의 뜻일 것입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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