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주제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총회는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접근에 있어서 큰 전환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총회는 과거의 어느 시노드보다 더 솔직하고 겸허한 대화와 토론으로 그 최종 성과물의 풍성함과 함께, 교회의 공동합의성(synodality)의 참 면모를 보인 것으로도 평가된다.
지난해 제3차 임시총회에 이어 이번에도 한국 대표로 참석한 전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로부터 시노드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듣는다.
▲우선 이번 시노드의 특징과 의미를 정리해주십시오.
- 강우일 주교(이하 강): 지난해에 이어 가정을 주제로 두 번째로 열린 시노드입니다. 대개 4년에 한 번 정도 열리는데 임시총회에 연이어 재차 총회를 소집한 이유는 그만큼 가정 문제가 심각하고, 한 번의 회의로는 다루기가 버겁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지난해 임시총회는 현대 가정의 현실, 시련과 고통을 더 깊숙이 살펴보자는 데 의의가 있었습니다. 이어 올해 총회에서는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교회의 교리적 가르침과 보편교회의 통치 방향에 입각해 이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하는 사목적 차원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의안집이나 보고서들은 모두 3부로 구성됐고 회의 진행도 세 차례의 세션으로 이뤄졌습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교회의 성찰과 논리의 전개, 문제 해결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즉, 보고 관찰하고 행동하는 세 단계를 거쳐서 당면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방식입니다.
이전의 시노드들과는 달리 전체 발표보다는 그룹 토의를 통해 주교들간의 심층적인 대화와 토론에 더 중점을 둔 것도 특징적입니다.
▲주교님께서는 어떤 내용의 발표를 하셨는지요?
- 강: 전체 회의 발표가 8분에서 3분으로 대폭 줄었습니다.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저는 이혼 후 사회 재혼을 한 부부와 그 자녀들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이혼이라는 상처를 겪은 신자들이 성사생활을 포함한 신앙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교회사 안에서 성체성사의 모습은 역사적인 발전을 해왔음을 지적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사실 성찬례의 적용이 유연했습니다. 지금은 죄인, 비영세자는 성찬례에 참석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미사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영성체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체를 받아서 집에 모셔 두고 아프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영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성체성사는 의인에 대한 포상이 아니라, 죄인들에 대한 치유의 거룩한 약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성체성사에 대한 신학적 사고를 유연하게 한다면, 지금의 영성체 허용 규정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시노드는 이혼 후 사회 재혼 신자들에 대한 영성체 허용의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강: 최종 보고서 84항과 85항의 관련 내용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사실은 주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의안집에는 분명하게 이분들의 영성체 허용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담겨 있었는데, 이번 총회 보고서에서는 삭제된 점은 아쉬운 일입니다.
모든 이혼 후 재혼자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자는 일반적 원칙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자기 탓이 아닌 이혼, 혹은 도저히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 이혼 후 자녀 양육 등의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재혼을 한 분들에 대해서는 신중한 식별을 통해서 선별적으로, 혼인무효판결 없이도 성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 교구장의 결정으로 사례별로 참회와 용서를 구하는 기간을 거쳐서, 충분히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새로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기도의 시간을 거쳐서 영성체를 허용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찬반이 상당히 많이 엇갈렸습니다. 결국 최종 문서 작성 위원회에서는 여러 의견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보속의 과정을 거쳐서 영성체를 허용”하도록 하자는 문구를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취지와 내용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배제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교종께서는 주교들의 뜻을 충분히 고려하고 심사숙고해서 새로운 교회 공식 지침인 사도적 권고를 발표하실 것이고 그 안에서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실 것입니다.
▲주교들 사이에 입장 차이가 많이 보였는데, 이른바 진보적 주교와 보수적 주교들 간의 긴장감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 강: 교종께서도 지적하셨듯이,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많은 의견들이 있었는데, 모든 주교들의 논쟁과 토론이 반드시 선의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교종께서는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태도에 대해서 질책하기도 하셨지요.
시노드 개막 때에도 그러셨지만, 폐막에 즈음해서도 또 다시 참석 주교들에게, 아무리 의견과 생각이 달라도 상대방을 적대시하거나, 대결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엄정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시노드에서는 자신의 모습, 의견,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 안에서 교회의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나가려고 노력하는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번 시노드는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접근에 있어서 기조의 전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강: 분명히 시노드는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혼인과 가정을 거룩한 부르심, 성소로 파악했습니다. 이번 시노드는 남녀간의 결합이라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혼인과 가정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혼인과 가정 안에서의 사랑은 영원한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고 인간 사이의 관계 안에서 그것을 체험하고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혼인과 가정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그 이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번 시노드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시노드 결과가 특별히 한국교회의 가정과 가정사목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 강: 많은 시사점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특별히 소명으로서의 혼인을 위한 충분한 양성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10여 년의 양성 기간이 필요합니다. 결혼 생활은 사제 성소 못지 않은 거룩한 부르심, 성소입니다. 그만큼 준비와 양성이 필요합니다.
혼인 준비가 외국에서는 대개 3~6개월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는 불과 하루 이틀로 끝납니다. 이는 결혼을 성소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목적으로 거의 포기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혼인을 성소로 여긴다면 준비와 양성이 대폭 강화돼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혼이 초기 3~4년에 집중되기 때문에 혼인 후 수년 동안의 사목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모범적으로 오래 결혼 생활을 해온 부부가 이들 신혼 부부의 안내자가 되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강: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입장 변화는 없습니다. 물론 동성애의 성향을 지닌 이들도 교회의 일원이고 교회 공동체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점은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동성애 자체에 대한 언급이 빠진 것은, 이번 시노드의 주제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동성애적 성향을 지닌 이들을 가족의 일원으로 둔 가족 공동체의 맥락에 대해서 최종 보고서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도 가정의 구성원이고 따라서 이들을 함께 끌어안고 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바뀌지 않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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