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간 타국생활 후 귀국해서 운전할 때 무척 놀라고 당황스러웠던 문화 충격 중 하나는 방향전환 지시등을 켰을 때였다.
고속도로나 편도 2차선 이상의 도로에서 차선을 변경하거나 우회전을 위해 후방 차량과의 간격을 확인하고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선변경을 시작하면 후방 차량이 갑자기 내차 뒤편이나 바로 옆에 와 있어서 기겁하며 놀란 적이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이상하네, 내가 잘못 보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후 방향지시등을 켤 때마다 똑같은 현상은 지속됐고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 후방 차량이 빠른 속도로 달려와 공간을 내주지 않았던 것임을 깨달았다.
결국 다른 차들은 어떻게 차선 변경을 하는지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관찰했더니 대부분은 방향지시등을 차선 변경과 동시에 켜거나 아예 그마저도 켜지 않고 차선 변경을 하는 차량들이 대다수라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선변경을 위해 방향 지시등을 켜는 순간 나는 ‘을’의 운전자가 되고 직선주로에서 양보의 결정권을 지닌 이들이 ‘갑’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한국사회의 ‘갑을’ 관계는 도로 위에서도 펼쳐졌다.
마치 정글의 짐승들처럼 으르렁거리며 차선 변경 차량인 ‘을’이 자신 앞으로 ‘감히, 무례하게’ 들어오면 경적을 울리며 불쾌한 반응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앞으로 들어오려는 차량에게 ‘양보’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 잔혹한 사회가 돼 있었다.
뉴스에선 종종 자신의 운전을 방해했다고 보복 운전을 하거나 삼단봉이나 무기를 꺼내어 위협하거나 심지어 사람을 치는 사건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끔찍한 현상이었다. 차량을 운전하는 것은 사람이니, 운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행위였고 인격들의 집단행동은 사회적 현상 중 하나였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과 약자인 ‘을’을 위한 양보가 덕행이지만 양보를 하면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이 되는 것이기에, 이를 거부함으로써 점차 미덕이 사라지는 이기적인 사회가 돼버린 것이 슬퍼졌다.
본당 교우들에게 이러한 현상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일부는 ‘네 맞아요, 요즘 사람들이 너무 여유가 없어요’하며 인정하거나, 갑자기 끼어드는 얌체 차량이 얄밉고 무례하다거나, 깜빡이를 켜고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가 아일랜드에서 체험한 ‘인격’을 들려주곤 했다.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은 왕복 2차선 도로가 많았기에 교통체증도 자주 발생하곤 했지만 내 차가 도로진입을 위해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기다리면 언제나 지나던 차들이 먼저 멈춰서며 자신의 차 앞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려 줬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고 미안해서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을 해도 자기 앞으로 들어오라고 계속 손짓을 하며 기다려줬다.
“그건 체험해보지 못한 인격적인 감동이었어요! 인간이 약자를 위해 양보를 할 때 더욱 큰 감동과 존귀한 품위가 느껴짐을 알게 해주는 모습이었지요!”라고 말을 맺곤 했다.
양보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아름다울 수 있는 인격적 품위이며 향기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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