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설립된 안양대리구 하우현본당(주임 정광해 신부)은 박해시대부터 이어온 교우촌이자 교구에서 3번째로 설립된 본당이다.
하우현 일대에 언제부터 신자들이 살게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높은 산과 울창한 숲에 가려져 있어,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신유·병오박해 때부터 이 지역에서 순교자들이 났다.
이번에 시복된 복자 한덕운(토마스)도 1802년 광주 의일리(현 의왕시 학의동)에 살다 체포됐고, 1845년에는 하우현에 살던 김준원(아니체토)이 체포돼 순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866년 병인박해에 순교한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도 우리말을 배우고 신자들을 사목하기 위해 하우현 인근 둔토리 동굴에 숨어 살기도 했다.
1884년에는 이미 공소가 생겨 선교 사제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사목했다. 1888년 왕림본당이 설정되자 왕림본당의 관할 공소로 편입됐고, 1900년 9월에 본당으로 설립됐다. 설립 당시에는 16개 공소를 포함해 광주·용인·과천 등지를 담당하고 신자 수는 1105명이었다.
하우현성당 옆에는 초대 주임 신부인 샤플랭 신부가 1906년 건축한 사제관이 남아 있다. 사제관은 서양식 석조에 한국 전통의 골기와를 올린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졌다. 20세기 초반에 동서양의 건축기법이 혼용된 것은 드문 경우로 건축사적 가치가 높아 경기도 지정기념물 제176호로 등록되기도 했다.
1920년에는 4년제 초등과정의 경애강습소를 열어 문맹을 퇴치하는 교육사업을 펼치기도 했지만,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았다.
본당은 사제 파견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아 공소와 본당의 지위를 번갈아 오갔다. 1954년 안양에 중앙본당이 설립되면서 공소로 고정되고, 성당과 사제관은 사제들의 휴양지로 사용하게 됐다.
본당은 1978년에야 다시 본당으로 부활했다. 본당은 1982년 성 볼리외 신부를 본당의 두 번째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성상을 제작해 현양했다. 또 십자가의 길, 예수성심상 등을 설치해 본당의 환경을 아름답게 꾸며나갔다.
현재 본당의 교적상 신자 수는 200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순교자들의 정신을 잇는 교회 사적으로서 순례자의 영적인 충전을 위한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매주 화·수·목요일 오전 11시 미사 후에는 기도회를 열고, 매월 첫 토요일 오전 11시에는 성모신심미사를 봉헌한다.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에는 성시간을, 금요일 오후 10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3시 30분까지는 성령철야기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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