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쉐벳본당에 갔다가 정지용 신부님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날 정 신부님이 주일미사를 마치고 성당 밖에서 신자들하고 인사를 나누던 중 엄마 손을 붙잡고 떼를 쓰는 한 아이를 발견했답니다.
‘아이가 왜 떼를 쓰고 있을까?’ 궁금했던 정 신부님은 아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본 엄마가 뭐라고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그 말을 들은 아이는 황급히 엄마 뒤에 가서 숨더랍니다. 정 신부님이 가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자 놀란 아이는 급기야 비명을 지르다가 자지러지듯이 울었다고 합니다.
정 신부님은 이 이야기를 해주고 나서 저에게 혹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도 비슷한 경우를 겪은 적이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 뛰어다니고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연령의 아이들은 밝은 웃음으로 다가와 ‘아부나~’하고 인사를 건네곤 하는데, 엄마 품을 아직 떠나지 못하는 3~5살 아이들은 대개 제가 다가가면 까무러치게 놀라고 엄마 뒤에 숨었던 것을 본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러게, 왜 그런 거지? 생김새가 다른 외국인이어서 낯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사실 저는 그동안, 울면서 도망가는 아이들을 보면 달랜다고 따라가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지만, 아이들이 우는 이유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정 신부님은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말을 꺼냈습니다. “내가 오늘 그 비밀을 알아냈어. 여기 엄마들이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가와자(흰둥이)가 와서 잡아먹는다고 겁을 준다고 하네.”
“그럼 우리는 가와자(흰둥이)인거야, 아부나(신부님)인거야?”
“가와자인거지. 오늘 내가 다가갔을 때 아이한테 같은 말로 겁을 준 엄마도 우리 본당 신자였어. 내가 바로 앞에 있는 데도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혼내기 위해 ‘피부 하얀 외국인이 말 안 듣는 아이를 잡아먹는다’라는 괴담을 들려주는 것이 이곳 엄마들의 교육이라니, 거참 황당하지요?
이야기를 듣고, 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게 공포감을 주었는지 알고 나니 웃음이 나옵니다. 웃으며 다가오는 저의 표정이 아이들의 동심 안에서는 어떻게 비쳤을까요?
사제로서 이곳에 와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아직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방인으로 먼저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어디 ‘사람 잡아먹는 외국인 이야기’를 대신할 만한 것이 없을까요?
‘우는 아이의 울음도 뚝 그치게 한다는 무서운(?) 곶감’처럼, 저도 아이들이 보면 울음을 뚝 그치고 좋아서 방실방실 미소 짓게 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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