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제 일치순례는 4회째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는 앞서 2006년, 2009년, 2012년 세 차례 진행한 바 있다. 그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2009년 세계 그리스도인이 함께 기도하는 일치기도주간 기도자료집이 제작됐고, 2013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특히 2014년의 한국 신앙과직제 창립은 양 교회가 신학적 대화는 물론 선교협력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성과로 평가된다.
본지는 3회에 걸쳐 국제 일치순례 동행 취재기를 싣는다.
▲ 주교회의 교회일치위원장 김희중 대주교(가운데)를 비롯한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순례단이 여러 종교가 첨예하게 대립 중인 예루살렘을 방문, 황금사원이 바라다 보이는 올리브산 언덕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 유다교, 이슬람교의 공통된 성지이다. 그리스도교로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무대이고, 유다교 입장에서는 하느님 약속의 땅을 상징한다. 이슬람교에서는 메카와 메디나 다음으로 가장 신성한 ‘제3의 성전’으로 통한다. 그런 이유에서 특별히 유다인과 무슬림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종교적 갈등은 여전히 첨예하다. 한국그리스도인 일치순례단은 불안한 균형이 이뤄지는 첫 순례지 예루살렘에서 항구적 평화를 이루기 위한 종교인 자세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다양한 종교 관계 확인
일치순례단은 10월 24일 오전 11시(현지시각) 주님무덤성당이 위치한 예루살렘 그리스정교회 총대주교청에서 다양한 종교의 공존 상황을 확인하는 것으로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최고 수장인 테오필로스 3세 총대주교는 순례단과 만난 자리에서 유다교와 이슬람교, 가톨릭과 개신교 등 다양한 종교들의 갈등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테오필로스 총대주교는 “예루살렘은 성스러운 땅이고, 그리스도교를 비롯해 유다교와 이슬람교 등 전 세계 모든 영혼의 오아시스”라며 “정교회는 이 같은 성스러운 곳을 관리하는 영성적이고 종교적인 임무를 띄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인 공동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정기모임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대주교는 여러 종교들이 예루살렘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려는 정치적 이해상충 때문에 교회 일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곳은 어느 한 종교 소속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성지이고,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며 “타 종교 간 차이를 줄이는 것은 성경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평화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순례단은 다음날인 25일 오전 11시 예루살렘 북쪽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수도 라말라에서 이슬람 최고 종교지도자인 무함마드 후세인 무프티(Mufti)를 만났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유다인들이 민족국가를 세우기 위해 2천년 동안 이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고립시킨 지역이다. 반 이스라엘 저항운동으로 크고 작은 분쟁 소식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무프티를 만나기 위해 찾은 이곳에도 흔히 ‘분리장벽’이라 불리는 콘크리트 벽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로막고 있었다.
후세인 무프티는 “예루살렘의 의미는 ‘평화의 도시’이지만, 이스라엘 점령 후 이 지역엔 평화가 사라졌다”며 “분리장벽 설치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사회, 문화, 교육 등 삶의 모든 방면에 영향을 미쳐 가족과 가족, 부모와 아이를 분리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프티는 이 지역 종교들이 일치를 표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프티는 “이슬람과 그리스도교는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종교를 떠나 하나의 팔레스타인 시민이기 때문”이라며 “모두가 이곳에서 시민권과 종교 자유를 누릴 동일한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어느 곳이건 모든 사람이 인간 존엄성을 존중 받고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슬람교에 대해 유다교는 어떤 생각일까? 순례단은 26일 오전 예루살렘 유다교 공적 기도·예배 장소인 시나고그(synagogue)에서 엘리 야페 박사와 만나 입장차를 확인했다.
야페 박사는 “유다인에게 믿음이란 종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까지 아우르는 것”이라며 “유다인은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와 함께 인간과 인간 사이 관계를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다인은 사랑과 관용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따르며, 예루살렘에서 모든 종교를 존중해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에 대한 입장은 단호했다. 야페 박사는 “지난 수십 년간 비관용적인 종교가 유다교뿐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핍박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이슬람교도들은 이 땅에 회당을 지어 유다교를 파괴하고 이 곳을 자신들 성지로 만들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슬람교도는 기도할 때 회당을 등지고 기도하는데, 성스러운 곳이라면 우리가 제단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처럼 앞을 보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도 설명했다.
▲ 10월 26일 예루살렘 유다교 공적 기도·예배 장소인 시나고그에서 엘리 야페 박사가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순례단과 평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종교 일치를 위한 노력
순례단은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공식일정으로 26일 오전 라틴교회 총대주교청을 방문, 윌리엄 쇼말리 보좌주교로부터 종교간 대화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예루살렘 라틴교회 총대주교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요르단, 키프로스 전역의 라틴교회를 관할한다.
쇼말리 주교는 라틴교회가 유다교와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간 대화를 꾸준히 이끌어오고 있으며, 특히 유다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쟁이 일어나면 양측 피해지역을 방문해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함께 기도한다고도 했다. 며칠 전에는 기후변화 문제로 종교인들과 대화를 했다고 전하며 “공동의 집에 살고 있는 신앙인 모두가 공통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또한 종교간 대화”라고 말했다.
특히 쇼말리 주교는 “유다교에서든 이슬람교에서든 폭력을 자행했거나 가담한 것만으로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의 이중언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어 “어떤 종교든 방해받지 않고 기도할 권리가 있다”며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통합된 언어를 사용해야 하며, 이중언어를 사용하거나 모호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이는 종교간 대화를 어렵게 한다”고 밝혔다.
▲ 10월 26일 예루살렘 라틴교회 총대주교청을 찾은 김희중 대주교(왼쪽) 등 일치순례단이 쇼말리 주교에게 교회일치 상징 보자기를 선물하고 있다.
평화 실현방안 찾다
예루살렘에서의 일정들을 통해 일치순례단은 ‘평화의 실천’에 대해 보다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야 함을 인지했다. 예루살렘 방문은 특히 남북 분단으로 평화가 더욱 절실한 한반도 상황에서 종교인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할 지 고민한 시간이었다.
순례에 참가한 손정명 수녀(체칠리아·선한목자예수수녀회·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는 “유다교, 이슬람교의 평화와 사랑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차이가 느껴졌다”고 밝혔다. 손 수녀는 “평화를 원하고 타 종교인들 삶을 존중한다 말하면서도 정작 상대방 행동에 따라 입장을 달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종교인들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내 입장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상대를 존중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타 종교와의 관계에서 폭력적 어려움이 있는 곳을 찾아 위로하고 평화와 환경 문제 등을 함께 의논하는 교회 활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최부옥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는 “평화의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상에서 흘린 피의 희생이 종교인들의 자세가 돼야 함을 강조했다. 최 목사는 “유다교와 이슬람교의 모습은 소위 자기 방어나 보존을 위한 최소한의 영역 지키기였고, 그런 차원에서 이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며 “세상 변화와 구원, 평화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결국 세상의 평화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주님 부르심에 따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행동하는 종교인으로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순례단 김희중 대주교(맨 왼쪽)와 황용대 목사(맨 오른쪽)가 10월 25일 팔레스타인 자치기구 내에서 이슬람 최고 종교지도자 후세인 무프티와 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