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시기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오늘 복음은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환난과 어둠 그리고 자연적인 현상의 변화들은 성경에서 종말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현들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이와 함께 예수님 비유를 소개합니다. 나무를 보고 사람들이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아는 것처럼 종말 역시 표징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통해 종말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은 동일한 사건의 다른 이름입니다. 또한 구원의 완성이라는 표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다니엘서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나라가 생긴 이래 일찍이 없었던 재앙의 때가 오리라. 그때에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그렇기에 종말은 믿는 이들에게 두려운 시간이 아니라 구원의 시간입니다. 성경에서 조금은 두려움을 자아내는 표현들로 묘사되는 종말은 믿음을 간직한 이들에게는 기다림이 성취되는 때이고 구원이 완성되는 때입니다. 이런 까닭에 신앙인들은 종말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무서운 종말이 구원의 때임을 보여주는 사건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히브리서는 그것은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곧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다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신 이 사건은 신앙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보증이기도 합니다.
종말에 대해 복음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종말의 때는 누가 미리 예견할 수도, 또 그것이 언제라고 말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이유에서 ‘시한부 종말론’이라고 부르는, 날을 정해 놓고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합니다.
신앙인들은 종말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종말이라는 표현은 물론 미래에 올 사건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이것을 현재에서, 오늘,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신앙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내일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질지 아닐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어쩌면 단순하게 이러한 사실을 말해 줍니다. 지금, 오늘 믿음에 충실한 이들은 종말 때에도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지금의 모습이 나의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실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늘 후회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할지도 모릅니다. 구원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구원이 완성되는 것은 미래의 일이겠지만 우리는 지금 구원의 모습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종말에 대한 성경 말씀들은 먼 훗날을 준비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우리에겐 선물처럼 주어지는 ‘오늘’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하느님의 뜻을 찾고, 오늘 사랑을 실천하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종말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주어지는 가르침입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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