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그리스 정교회, 이슬람교, 유다교, 가톨릭 지도자들과 만나 종교간 일치와 평화에 대해 의견을 나눈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순례단은 이스라엘과 이탈리아 내 성지도 방문했다.
순례단은 예루살렘 성을 방문, 종교간 대치가 극한 상황인 유다교, 이슬람교 모습과 더불어 평화의 다리를 놓으려는 그리스도교 노력을 살펴봤다. 이어 ‘평화의 사도’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이 녹아 있는 이탈리아 아시시를 찾아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묵상했다.
성지 차지하려는 첨예한 갈등
일치순례단은 10월 24일 예루살렘 성 ‘서쪽 벽’, 일명 ‘통곡의 벽’을 찾았다. 유다교 대표 성지로 통하는 이곳에는 안식일을 맞아 많은 유다인들이 벽을 마주보고 서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벽 틈새로는 기도가 적힌 종이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성당에서는 모자를 벗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써야 했다.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인 남자들은 ‘키파’라 불리는 정수리 모자를 써야 들어갈 수 있다.
통곡의 벽은 기원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파괴된 옛 예루살렘 성전의 잔해다. 구약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1열왕 8,30)라고 한 것처럼, 유다인들은 지금도 옛 지성소와 가까운 이곳 서쪽 벽에 모여 기도한다.
반면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창시자 무함마드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는 중요한 성지다. 632년 이슬람교도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곳에 사원을 지었다.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6일 전쟁) 때 점령한 후부터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지만, 이슬람 사원만큼은 예루살렘 성내 유일한 이슬람 해방구다.
불안한 공존 속에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한 첨예한 갈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끊이지 않는 분쟁도 이러한 종교적 이유와 무관할 수 없다.
공존 위한 노력 확인
다양한 종교가 공통 성지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도 확인했다. 순례단은 같은 날 예루살렘 성벽 바깥에 위치한 주님 무덤 성당을 방문, 800년간 성지를 지키고 있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사들로부터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주님 무덤 성당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곳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순례장소인 만큼, 전 세계 다양한 인종의 신자들이 주님 무덤 경당, 예수님 시신을 염했던 받침대 등에서 경배하고 있었다.
현재 이곳은 작은형제회로 대표되는 가톨릭교회를 비롯,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트교회, 에디오피아 교회 등 여섯 교회 공동 소유로 돼 있다. 1852년 체결된 ‘현상 유지법’에 의해 성당 내 소유권과 전례, 전통들을 인정받고 있다.
순례단을 맞이한 김상원 수사(테오필로·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는 주님 무덤 성당이 교회 일치가 실현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김 수사는 “다양한 종교인들이 서로 경배하려는 열성을 확인할 수 있고, 배타적 모습은 찾기 힘들다”며 “성지를 소유하려하기 보다는 주님께서 업적을 이루신 장소에서 사랑을 표현하려는 자세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작은형제회의 창설자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이기도 하다. 김 수사는 “남과 다투거나 판단하지 않고 평화롭고 겸허하게 상대방을 대해야 한다는 성인 말씀은 무슬림 술탄에게도 깊은 감명을 준 바 있다”며 “무력이 아닌, 사람들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그런 모습이 성지를 800년간 지켜올 수 있었던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순례단은 다음날인 25일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예수 탄생을 전한 장소인 ‘목자들의 들판 성당’, 예수 탄생 장소로 알려진 ‘주님 탄생 성당’도 방문했다.
성 프란치스코의 도시, 아시시
이탈리아로 건너간 순례단은 27일 아시시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흔적을 찾았다. 주님 무덤 성당에서 발견한 ‘평화로운 공존’ 정신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너그러움과 단순함,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헌신, 자연에 대한 사랑과 진실한 겸손 등을 실천한 ‘평화의 사도’로 불린다. 비오 11세 교황은 그를 ‘제2의 예수 그리스도’로 지칭했다. 아시시 인근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가서 무너지려고 하는 나의 집을 돌봐라”는 목소리를 듣고 소명을 자각했다고 전해진다. 1228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으로부터 시성됐다.
아시시에서 처음 찾은 곳은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고 선종한 장소로, 그의 정신이 곳곳에 그대로 녹아있었다. 성당 내부에는 ‘작은 몫’을 의미하는 성당 포르티운쿨라(Portiuncula)가 있다. 청빈, 정결, 순종의 삶을 다짐하는 동료들과 함께 ‘작은 형제회’를 태동시킨 곳이고, 성인이 선종한 장소로도 알려진다. 폭 4m, 길이 7m의 이 작은 성당을 장대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품고 있는 모습이다.
평화의 사도인 성인을 기념하는 이곳에서 1986년 ‘세계 종교평화 기도회’가 열린 바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오로지 기도만이 혼란한 세상에서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취지로 세계 종교지도자들을 초대, 종교간 대화의 물꼬를 텄다. 15년 뒤인 2001년,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1년에도 기도회가 이어졌다. 성당 입구에는 이를 기념하는 부조화가 새겨져 있다.
순례단은 구도심 서쪽 끝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그의 삶을 계속 묵상했다. 성인 유해를 안치하고 기념하기 위해 1228년부터 지어진 성당이다. 지하무덤에는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고, 성당 벽에는 성인의 생애를 그린 화가 지오토의 프레스코화 28점이 장식돼 있다.
순례단을 안내한 윤지영 수사(프란치스코 하비에르·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작고 소외된 이들도 모두 감싸 안는 성인의 모습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이 세상에 반드시 되살려야 할 영성”이라며 “종교 지도자부터 이러한 모범을 세상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랑을 실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과 행보 안에서 성인의 영성을 실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아시시에서 순례단은 종교뿐 아니라 한국 분단사회에서의 일치 역시 ‘평화’가 열쇳말임을 다시 한 번 자각했다.
김동진 사관(한국구세군 인사국장)은 “구세군도 가난의 영성으로 시작된 교단이라는 면에서, 이번 프란치스코 성인과의 만남이 더욱 뜻 깊었다”며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생각이 결국 평화를 깨어지게 한다고 지적했다. 김 사관은 이어 “한국도 남과 북이 분단된 현실에서, 내가 먼저 깨지고 낮아지지 않는다면 일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묵상하게 됐다”며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교가 앞장서서 해야할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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