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12월 8일 일제히 ‘자비의 특별 희년’이라는 특별한 은총의 시기로 들어선다. 이날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막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자비의 특별 희년이 이 뜻깊은 날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희년’이 ‘아직 끝나지 않은’ 공의회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적 의지를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공의회가 시작한 ‘새 복음화’의 여정을 더욱 본격적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촉구이기도 하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11월 5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마련한 특별 세미나 ‘자비의 특별 희년과 한국 교회의 사목 방향’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특별한 성찰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깊이 연관되며, 이는 다시금 미래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이르는 ‘새 복음화’의 여정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지난 10월에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총회는 전년의 제3차 임시총회와 함께, 하느님 자비의 체득과 실현을 위한 첫 발걸음이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함께 성찰하는 기회였다. 이제 한국교회는 보편교회 및 교황과 함께 ‘하느님 자비’를 교회의 신학과 사목의 바탕으로 하는 원대한 사목적 전환이 요청되는 시점에 서 있다.
이미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커다란 전환을 이루었지만, 지난 50년간의 노력이 다소 미흡했다는 점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세미나는 우선 전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의 기조강연을 통해서, 가정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 제14차 정기총회와 관련해, 하느님 자비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하는 가정과 가정사목에 대한 발표로 시작됐다.
강 주교는 특별히 기조강연에서, 새로운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으로서의 공동합의성(synodality)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을 강조했다. 즉, 서로 경청하고 함께 걸어가는 교회가 바로 시노드이며, 시노드 과정 전체는 주교들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주교들이 대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교들은 하느님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이처럼 백성들의 고통의 신음 소리를 듣고 위로와 치유를 나누고 삶에 동반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가 취해야 할 ‘자비’의 출발점이라고 강 주교는 설명했다.
기조강연에 이어 두 개의 발제로 두 가지 성찰이 이어졌다. 즉, 세미나는 먼저 현대 사회와, 심지어 교회 생활과 신학에서조차 소홀하게 취급됐던 하느님 자비의 신학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적 전환의 노력과의 상관성 안에서 고찰했다. 공의회 정신이 한국교회 안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고 수없이 지적했던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이 발제를 맡았다.
이어 두 번째 발제에서는 희년에 즈음한 한국교회가 어떤 사목적 과제들을 앞에 두고 있는지를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을 개괄하면서 성찰했다. 교회의 사회적 참여에 대한 깊은 관심을 피력해온 서울대교구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가 발제했다.
두 개의 주제 발표에 대한 논평은 정희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와 박선용 신부(서울대교구 정릉4동본당 주임)가 담당했다. 두 논평자는 발제문에 모자라지 않은 적절하고 깊이있는 논평으로 자리를 빛냈다.
우선 심상태 몬시뇰은 자비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신학적 성찰을 담은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저서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 문헌, 즉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 「자비의 얼굴」 등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자비라는 주제가 포함하고 있는 신학적 내용들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확장과 새 복음화의 과업이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심 몬시뇰은 신학적으로, 그리고 사목적으로 하느님 자비를 깊이 있고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음을 반성했다. 하느님 자비에 대한 신학적 의미 구명이 신학계와 사목 분야 관계자들에게 최우선의 과제로 부여된 것은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라고 지적했다.
‘자비의 실천은 교회 생활의 토대’이고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요청이 바로 희년의 표어이다.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와 문화가 자비를 잃었을 뿐 아니라, 교회조차도 하느님 자비를 상실했다는 지적을 교황이 하고 있음을 몬시뇰은 상기시킨다. 결국 자비의 희년은 교회와 신자들이 하느님처럼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촉구가 아닐 수 없다. 이어서 몬시뇰은 자비와 정의의 관계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을 지적하고, 자비 실천의 사회적, 생태적 차원에 대해서도 상당한 비중으로 설명했다.
무엇보다 심 몬시뇰은 교황 선출 이후, 그리고 희년의 선포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추진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적 지향을, “폐막 50주년을 맞은 공의회 정신과 가르침이며 선임 교황들의 가르침을 계승해 오늘날의 시대 상황 속에서 구현하려는” ‘쇄신 노력의 일환’으로 파악했다.
논평을 맡은 정희완 신부는 희년 선포의 배경을 신학적 전망, 교회사적 맥락, 사회 문화적 조류, 교황의 개인적 신념 등 네 가지로 파악하고, 희년 정신의 실천 방향을 모색했다.
정 신부는 특히 자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연적으로 신앙과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먼저, 교리에 대한 지성적 동의보다는 사랑과 자비로서 신앙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자비의 교회’는 단체성(collegiality)과 공동합의성(synodality)이라는 교회 쇄신의 두 열쇳말에서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자비의 특별 희년에 즈음한 한국 교회의 사목적 과제’를 모색한 박동호 신부는 ▲시대의 징표를 파악하고 사목적 전환을 이룰 것 ▲사회적 약자와 공동선 및 평화를 추구하고 교회 쇄신과 세상과의 대화를 시도할 것 ▲현대의 정치, 경제, 문화의 구조적 개선을 위한 예언자적 노력을 기울일 것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살리기 위한 노력 등 네 가지를 한국교회가 성찰할 사목 과제로 지적했다.
제2주제의 논평자인 박선용 신부는 다른 발제 및 논평자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교회상으로서의 ‘자비’를 살펴보고, ‘자비의 교회’가 되기 위한 사목적 쇄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즉, 자비의 해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으려면 지역 교회 안에서의 사목 쇄신을 위한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각 교구 시노드 등을 통해서 쇄신 작업이 시도됐지만, 명확한 교회상을 바탕으로 한 목표 설정과 당면 과제들의 우선순위에 대한 식별 없이 이뤄진 백과사전식 과제 나열로 추동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자비의 얼굴’로서의 새로운 교회상에 대한 깊은 성찰과 선택이 필요하고, 사목적 교회로의 전환을 위한 목표 설정과 우선 순위의 배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박선용 신부의 논평이다.
박 신부는 나아가 더 구체적으로, 교회 내적 차원에서는 본당 공동체 중심의 교구 운영 시스템 복원의 필요성, 사회적 차원에서는 경제 정의 실현을 위한 교육 및 정책 연구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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