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신부 시절, 본당 뒷골목 담벼락의 무단투기 쓰레기와 일 년간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다. 쓰레기를 치우면 어느새 쓰레기들이 한두 개 모이기 시작해 또 다른 쓰레기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여름이 되면 악취가 나고 파리가 들끓어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버려진 양심을 규탄하거나 한숨 짓는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세상이 더 더렵혀지지 않는 이유는 늘 어디선가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야’라는 각오로 쓰레기를 치우고, 물청소하고, 벽에 페인트도 칠하고, 화분을 가져와 꽃을 심었다.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보면 그 위에 더러운 쓰레기를 버리지 않겠지’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며칠 후 쓰레기는 모이지 않았지만 화분에 꽃들이 없어지거나 값이 나가는 화분은 통째로 사라졌다. 어이 없었지만, 들고 갈 수 없는 큰 화분에 돌을 섞고 그것도 모자라 철사로 화분들을 묶어놓았다. 하지만 가을이 돼 꽃들이 죽자 그 화분 위로 또다시 쓰레기들이 모였다. 시든 꽃을 대신해 깔끔한 조화로 바꾸었다.
근 일 년에 가까운 세상과의 전투였지만 문제는 쓰레기가 아니라 쓰레기를 버린 ‘사람’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남들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악행을 저지른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운 시간이었다.
‘깨진 유리창 증후군’이라는 범죄학 용어가 늘 생각났다. 공장지대에 유리창이 깨져있으면 그 지역 범죄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에 대한 용어였다. 작은 불법이 용인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커다란 범죄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에 깨진 유리창을 꾸준히 갈아 끼우면 범죄 발생률이 낮아진다는 연구였다.
지금 본당에서는, 화성시 주관의 크린시티 프로그램에 참여해 본당 앞 도로를 입양해서 청소하기로 결정했다. 성당 주위는 공장지대에 사람의 왕래가 적은 주변 도로라 시에서 청소해 줄 수가 없어 쓰레기가 굴러 다녔다.
여기에 불평만 하지 말고 본당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세상을 깨끗이 가꾸는 봉사를 하자는 취지였다.
시에서 청소용 형광 조끼와 집게와 쓰레기봉투도 받았으니 이제 나가서 청소만 하면 됐다. 어느 날 혼자 조끼를 입고 길에 나가 하루 종일 쓰레기봉지 7자루를 수확해서 군데군데 모아놓았다. 하지만 며칠이 더 지나자 내가 모아놓은 쓰레기 봉지 주위로 비슷한 색상의 봉지들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쓰레기들이 쓰레기들을 불러 모으는 기막힌 현상을 보고 혀를 차고 말았다. ‘인간이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는 불가사의한 세상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선천적인 것일까? 후천적인 학습에 의한 것일까? 세상의 악은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거짓말을 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원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거짓말을 따라 하게 되는 것일까? 왜 인간은 늘 어처구니 없게 변덕스러우며 뻔뻔한 것일까?
하지만 그러한 인간도, 그런 세상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실재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듯 내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마음에 쓰레기가 가득하다면 또 다른 쓰레기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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