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살인자’(Hidden Killer)로 불리는 지뢰는 인간이 만든 가장 잔인하고 비열한 무기라고 일컬어진다. 한반도 곳곳에 묻힌, 위치조차 확인이 안 되는 지뢰 상황은 전 세계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휴전선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약 100만발, 부산과 대구, 광주 등 후방에도 7만5000발의 지뢰가 매설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부는 전국의 미확인 지뢰를 제거하는 데 489년이 걸릴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묻기는 쉽지만 다시 찾기는 어려운 지뢰가 한반도 분단과 그 결과인 한국전쟁, 한국전쟁으로 고착화된 남북 대치의 상징물이라는 인식은 약한 것이 현실이다. 지뢰 피해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거기 꼼짝 말고 계세요! 겉보기에는 죽은 것 같지만 아직 살아있는 겁니다. 뇌관이 살아 있을지 모르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해마루촌(민통선 마을) 인근 야산. 김기호(요셉·의정부교구 원당본당) 한국지뢰제거연구소 소장이 들고 있던 지뢰탐지기가 ‘우웅’ 고음의 기계 소리를 냈다. 지뢰가 묻혀 있음을 알려온 것이다. 순간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김 소장은 지뢰 매설 예상 지점을 둘러싸고 조심스럽게 가로·세로 약 1m의 홈을 파기 시작했다. 갈퀴와 낫으로 홈을 판 부위의 낙엽을 조금씩 걷어내고는 자석 성분을 입힌 호미로 땅을 파낸 지 불과 1~2분. 호미에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길이 약 20㎝, 폭 10㎝ 정도의 녹슨 사각형 지뢰가 모습을 드러냈다. 육안으로는 마치 흔한 철제 도시락통처럼 보인다. 바로 옆쪽으로 또 한 발의 같은 지뢰가 발견됐다.
발견된 지뢰의 정식 명칭은 ‘M7A2’ 대전차 지뢰.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에서 개발돼 한국전쟁에서 널리 쓰였다. 무게 약 2.2㎏으로 가벼워서 보병들이 전용가방으로 옮겨가며 설치했다. 김 소장은 “뇌관을 교체하면 대인 지뢰로도 쓰인다”며 “60~110㎏의 하중만 있으면 경전차 바퀴를 박살낼 정도로 터지기 때문에 사람이 밟으면 매우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지뢰가 발견된 야산은 ‘지뢰 위험’ 표지조차 없다. 수십 가구가 논밭을 일구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지뢰가 방치되고 있다. 김 소장은 “북한의 목함지뢰보다 살상력이 35배 높은 것이 이 대전차 지뢰다”며 “민간인이 생활하는 곳 바로 옆에 지뢰가 도사리고 있는데 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나”라고 되물었다.
이후에도 야산 중턱 쪽에서 ‘M14’ 발목지뢰로 추정되는 파편이 수십 개 발견됐다. 발목지뢰는 둥근 모양으로 무게 100g에 지나지 않지만, 한 번 밟게 되면 말 그대로 발목이 크게 손상된다. 수백 개의 파편이 종아리 위쪽으로 깊이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응급처치가 없다면 과다출혈로 사망에 이른다. 플라스틱이라 금속 탐지기에 탐지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태풍이나 홍수로 쉽게 유실된다는 것이다. 일단 유실되면 말 그대로 ‘시한폭탄’이 된다.
민족상잔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 및 이후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국군과 연합군에 의해 비무장지대 또는 민통선 인근에 매설된 것으로 확인된 지뢰만 무려 40만발이다. 별다른 정보가 없는 북한 인민군 매설 지뢰는 제외한 수치다. 이 중에서도 유실 위험이 크고 탐지가 어려운 M14 발목지뢰가 10만발에 달한다.
지뢰의 위험이 전방에만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단법인 ‘평화나눔회’에 따르면 정확한 매설지점 확인조차 되지 않는 지뢰가 전국에 약 100만발, 후방에도 약 7만5000발이나 된다. 미확인 지뢰매설 면적은 약 90㎢다. 여의도 면적의 33배에 달한다.
문제는 모든 것이 추정일 뿐, 사실상 정부조차 대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 이후 지뢰를 밟아 사망하거나 크게 다친 사례가 1000여 건에 이른다.
가톨릭 신자인 김 소장은 신앙심으로 자비를 털어 연구소를 설립한 뒤 지뢰 탐지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례다. 보다 못한 민간이 나설 정도로, 정부나 우리 군의 대처는 미미하다.
군 당국에 따르면 군이 보유한 지뢰제거 능력은 최대 6개 대대 규모다. 1년 예산은 약 4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1년에 평균 20만㎡ 면적의 지뢰제거를 실시하는데 그쳐 만약 군의 작업으로만 전국의 지뢰를 다 제거하려면 약 490년이 넘게 걸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2010년 파주 지역 한 농민이 자신의 밭에서 지뢰를 대거 발견하고 군에 신고했지만 군이 이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농민이 사비를 들여 민간제거업자를 불렀고 무려 150발이 넘는 지뢰가 발견됐다.
익명을 요구한 파주시 농민 A씨는 “지뢰가 무서워 조금만 비가 와도 바깥 출입이 꺼려진다”며 “밭에서 일을 하다 딱딱한 물체가 걸리면 지뢰일까봐 마음 졸이니 참담한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기호 소장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지뢰는 반드시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하는 것”이라며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실천에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방준식 기자>
▲ 곧 이어 발견된 ‘M7A2’ 대전차 지뢰. 철제 도시락만한 크기지만 북한 목함지뢰보다 살상력이 35배나 높다.
▲ ‘M14’ 발목지뢰 파편. 플라스틱으로 돼 있어 금속탐지기에 탐지되지 않아 위험이 크다.
● 온 몸에 지뢰 파편 피해 입은 이준기(베드로)씨
“약초 캐러간 밭엔 경고문 하나 없어
국가는 배상은커녕 벌금내라 큰소리”
▲ 전국의 지뢰피해자들이 11월 1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대물림 되는 지뢰 피해자들의 기구하고 억울하기만 한 삶의 내력에서 떠오르는 말이다. 부모 세대에서 자식 세대로 피해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비유적 의미에서 수난이대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부모와 자식이 때를 달리해 뜻하지 않게 지뢰를 밟아 평생의 상처를 대를 이어 안고 사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이준기(베드로·59·춘천교구 양구 해안본당) ‘양구군 군사격장 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은 1984년 온몸에 지뢰 파편상을 입었다. 지금도 머리에서 발까지 수십 개의 지뢰 파편을 몸 속에 그대로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1970년대 초반 지뢰 피해를 당한 아버지에 이어 자신마저 지뢰 피해자가 될 줄은, 그로 인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버지는 양구 군부대에서 사격과 경계를 위한 시야를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실시하던 ‘사계청소’(射界淸掃)에 동원돼 나무와 풀을 베다 지뢰를 밟았습니다. 왼쪽 팔이 골절되고 오른쪽 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입어 육체적 고통 이상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지만 국가로부터 병원비 한 푼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생계에 종사하지 못하게 되자 이 위원장 가족은 고철을 주어 살아야 할 만큼 궁핍해졌다.
“1984년 6월 4일입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저와 지인 두 명이 양구군 동면 비아리 지역에 약초를 캐러 들어갔다가 지인 가운데 한 명이 지뢰를 밟아 지인 두 명은 그 자리에서 죽고 저는 파편상을 입으며 몸이 튕겨 나갔습니다. 군부대에서 지뢰 위험 표지판만 세워놨어도 사고가 안 났을 겁니다. 지뢰 피해 후유증으로 심장 부정맥과 만성 백혈병이 생겨 지금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 위원장 역시 피해배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벌금을 물었다. 양구군 동면 팔랑2리 이장으로도 일했던 그가 지뢰 피해자의 권익을 위한 목소리를 내면 ‘사상이 불순하다’거나 ‘괜히 시끄럽게 만든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때가 많았다.
“60년 넘는 세월 동안 지뢰 피해자들이 감내해온 부당한 처사에 대해 개신교 목사와 불교 스님들은 국가를 향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고 지난해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했습니다.”
지난해 가톨릭농민회 춘천교구연합회 총회준비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교회 활동에도 열심인 이 위원장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으면 종교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순 기자>
지뢰 피해자들 “한국교회에서도 지뢰 제거 목소리 내주길”
천주교인권위 활동 이외 공식 입장 밝힌 적 없어
199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지뢰금지 국제운동’의 한국지부인 ‘평화나눔회’는 2011년 강원도지역 민간인 지뢰피해자(340여 명)를 전수조사해 전국 민간인 피해자 규모는 1000명이 넘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분단과 한국전쟁이 남긴 심각한 상처인 지뢰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한국교회가 지뢰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사실을 찾기는 어렵다.
지뢰 문제 전문가인 한국지뢰제거연구소 김기호(요셉) 소장은 “한국 가톨릭교회나 주교단이 지뢰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발표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평화나눔회 김난경 사무국장도 “한국교회 차원에서 지뢰 문제를 언급한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가톨릭교회 내에서 지뢰와 관련해 이뤄진 활동은 2011년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제28회 가톨릭대상 정의평화부문 특별상 수상자로 김기호 소장을 뽑은 것과 2012년 (사)지학순정의평화기금이 ‘캄보디아 지뢰금지운동’에 제15회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준 것 정도를 찾을 수 있다. 올해 10월 14일에는 천주교인권위원회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와 공동명의로 ‘사고 당시’ 월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위로금을 책정하고 있는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서한을 국방부에 보냈다.
1997년에는 예수회 한국관구가 지뢰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에 동참해 달라는 공문을 국내 각 수도회에 보낸 기록도 있다. 이 기도운동은 예수회 동아시아 지역구에 속한 캄보디아 예수회 피난민 서비스가 요청한 것이었다.
한반도에서 지뢰 제거 운동을 펼치는 이들과 지뢰 피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교회가 지뢰 문제에 침묵하는 모습은 아쉬움을 남긴다”고 말하고 있다.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