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일치순례단 환영
10월 28일 수요 일반알현이 열린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마침 이날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선언 「우리 시대」(Nostra Aetate) 반포 50주년을 기념한 자리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기 위해 광장을 가득 메운 6만 명 순례객 중에는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순례단을 비롯해 이슬람교와 유다교, 힌두교, 불교 등 타종교 지도자들도 함께했다.
이날 알현에서 교황은 “한국에서 온 에큐메니컬 순례단”이라며 이들을 환영했고, 순례단 공동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주교회의 의장·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장)와 황용대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장)를 비롯, 최부옥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김동진 사관(한국구세군 인사국장)과 악수로 인사를 나눴다. 일치순례단 대표들은 교황에게 한국 전통 자개병풍을 선물했다.
교황은 “지난 50년간 종교간 대화가 발전해왔고, 그리스도인과 유다인들, 무슬림들과의 관계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종교인들은 ‘인류’라는 하나의 가족으로서, 당면한 문제들에 함께 맞서고 공동선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청 일치촉진평의회와 대화
일치순례단은 이어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 사무총장 브라이언 파렐 대주교와 만나 종교간 일치와 협력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일치촉진평의회는 그리스도교 갈라진 형제들이 일치를 회복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과 활동을 하는 부서다. 교회 일치 운동에 관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결정들이 실행될 수 있도록 하고, 교회 일치운동이 원칙에 따라 실현될 수 있도록 조정한다.
파렐 대주교는 교회 일치순례가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하고, 하느님과 복음에 대한 신심을 두텁게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이러한 개방성은 곧 공동선을 위해 신앙의 진실을 회복한다고도 했다. 파렐 대주교는 “종교간 대화 이전에는 서로의 차이점이 눈에 띄었겠지만 지금은 믿음 안에서 공통점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러분의 순례길이 종교간 협력을 증진하고, 보다 많은 대화와 존중을 통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한국사회에 증언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으로의 활동 고민
일치순례단은 일정을 마무리하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한국에서 실천할 것이 무엇인지 각자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정명 수녀(체칠리아·선한목자예수수녀회·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는 “타 종교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가톨릭이 갖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알 수 있고, 더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어 “타 종교 평신도들과 공통의 목적으로 성지를 순례하고, 타 종교 이해를 위한 강좌를 여는 등 교류 기회를 넓혀간다면 일치와 화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태현 목사(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직제협의회 공동사무국장·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일치협력국장)는 예루살렘에서 각 종교들이 신앙을 지켜가면서 어떻게 서로 평화롭게 지내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예상과 달리 훨씬 풍성하고 안정적으로 종교간 역할을 감당해내는 모습을 발견했다”며 “앞으로 한국사회가 세계 여러 종교들과 교류할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종교 대표들뿐 아니라 평신도들과 대화할 기회가 적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 목사는 “청소년, 청년 신자들과도 이러한 순례 기회를 만들어 삶의 현장과 한반도에 어떻게 역할을 하고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겠다”고 덧붙였다.
▲ 10월 28일 수요 일반알현이 열린 성 베드로 광장. 비그리스도교와 교회 관계에 관한 선언 「우리시대」 반포 50주년을 기념한 자리였다.
▲ 루터교 원종호 목사, 구세군 김동진 사관,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교황청 일치촉진평의회 사무총장 브라이언 파렐 대주교, 기독교교회협의회장 황용대 목사, 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최부옥 목사, 교황청 일치촉진평의회 우스마 몬시뇰(앞줄 왼쪽부터) 등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순례단과 교황청 일치촉진평의회 대표들이 10월 28일 바티칸에서 종교간 대화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벽에 걸린 ‘베드로와 안드레아’ 이콘은 동서방 교회 화해를 통한 그리스도인 일치를 상징한다.
▲ 일치순례단이 10월 28일 성 베드로 대성당 순례 중 지하에 있는 베드로 사도 무덤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다.
■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순례단 공동의장 인터뷰
김희중 대주교
“공동선 위해 협력하는 계기 돼야”
“상대방 생각을 아는 것을 뛰어넘어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순례단 공동 의장으로 함께한 김희중 대주교(주교회의 의장·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장)는 이번 일치순례에 대해 “마음으로 감동을 주고받은 잊혀지지 않을 귀한 체험”이라고 했다.
순례에서 목격한 예루살렘 상황에 대해서는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의 불안한 공존은 정치 요소도 포함됐기에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염려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종교인들이 평화라는 공통 목표를 위해 협력하려는 노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어떤 폭력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앞으로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중요한 묵상거리가 됐을 거라고 말했다. 예루살렘 성지에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들, 또 아시시에서 성인의 영성을 살핀 것이 순례단에게 좋은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떤 사람이든지, 심지어 동물이나 꽃 등 모든 자연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진실하고 겸손하게 대했습니다. 그분의 영성을 확인한 이번 순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에 충실하면서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력 확장’보다는 인류 공통 관심사인 공동선을 위해 진솔하게 협력하는 종교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황용대 목사
“종교인 먼저 청빈과 겸손 실천하자”
“종교간 대화와 교회 일치운동을 소중하게 여기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시기에 저희 방문단을 특별히 맞아주신 것 같습니다.”
10월 28일 교황 알현 후 황용대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장)는 환대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다. “상호종교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 ‘다름에 대한 존중’이라는 열린 자세를 바티칸에서 느끼고, 배우고 돌아갑니다.”
황 목사는 이번 순례가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통해 평화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성인의 청빈과 겸손의 영성은 소유와 권력에 대한 욕심이 극에 달한 이 시대에 반드시 되살려야 할 영성입니다. 끊임없이 버리고 낮추는 자세는 비단 세상뿐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임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아울러 황 목사는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슬람교 무프티와의 만남에서, IS와 같은 과격분자들은 절대 무슬림이라고 할 수 없다며, 진심으로 평화를 걱정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평화가 이 도성에서 회복되리라는 강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북 분단 현실을 겪는 한국사회에서는 ‘이해’와 ‘존중’의 자세가 평화 실현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밝혔다.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어느 하나 배척할 수 없습니다. 일곱 가지 색깔이 함께함으로서 온전한 무지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순례가 종교인들에게 그런 정신을 재확인하는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