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달리 말해 역사는 오늘의 우리를 돌이켜 보게 만드는 지속적인 성찰입니다. 온전한 성찰이 없을 때, 대화는 사라지고 독백만이 남게 됩니다. 오늘날 세계 시민사회에서 독재자의 독백은 역사로서 결코 존중받지 못합니다. 독일이 세계적인 리더로 존중받을 수 있었던 것은 히틀러와 나치즘, 유대인 학살의 만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사죄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일본이 아시아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식민 지배와 온갖 악행을 숨기고 ‘미래세대에게 자긍심을 준다’는 이유로 과거를 미화하며 역사교과서를 왜곡해 왔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바라보는 역사적 관점은 이처럼 자신의 현재 마음가짐과 삶의 관계를 반영합니다.
역사는 한 민족, 국가, 사회가 함께 걸어온 ‘삶의 총체적인 이야기’입니다. 개인이 자기 자랑거리만을 늘어놓을 때 우리는 그를 미성숙하고 미덥지 못하다고 느끼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실패 혹은 방황하거나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진정성’ 있게 고백하며 현재의 삶을 드러낼 때 깊은 공감과 감동이 따릅니다. 이처럼 집단으로서의 역사도 바로 그 ‘총체성’ 안에서 있는 그대로를 대면할 때 삶의 의미와 가치가 깊이 녹아 흐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은 바로 이런 점들에서 심각하게 문제가 드러납니다.
역사학자들은 집권자의 개입에 의한 역사 서술을 늘 경계해 왔습니다. 예컨대, 구약시대 열왕기상 21장에서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밭을 강제로 빼앗고 그를 죽이고 자기 신하들을 통해서 자기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했던 것처럼, 집권자는 세상의 권력으로 자기중심의 독백을 역사의 이름으로 정상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엘리야는 하느님을 대신해서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이스라엘 왕 못지않게 소중한 당신의 자녀인) 죽은 나봇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하느님의 공의를 선포합니다. 이렇듯 예언자적인 입장에서 집권자들에 의해 희생되고 소외되어 잊혀진 ‘힘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역사의 총체성’ 안에서 밝혀내려는 시도가 오늘날 역사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를 세상에서는, 독재자 혹은 불의한 집권자들의 역사를 미화하지 않고, 자유 민주주의를 반영하는 역사라고 봅니다. (유네스코가 한국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지지하듯이, 이는 단순히 좌파, 종북의 논리가 결코 아닙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볼 때, 이는 세상의 참된 주인이시며 공의로우신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보편적인 ‘공동선’을 지향하는 가톨릭 사회론과 부합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75항’을 통해서 “국가의 통치 영역과 한계”를 분명히 언급하는데, “모든 국민이 아무런 차별 없이, 언제나 더 잘,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법적 정치 제도”를 요청합니다. 또한 76항에서는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에 필요한 중대사항일 경우 교회는 정치권력에 대해서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에서 교회가 “거리에 나가 더럽혀지고 상처받으며” 사회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도록 투신하기를 적극 권고합니다.
1987년 민주화 여정을 통해서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국민직선제를 성취한 대한민국에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것은 명백히 시대퇴행의 길입니다. 이는 마치 ‘컬러 TV’를 즐겨 보던 시절에 ‘흑백 TV’를 보라고 강요하는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경제 발전과 노동 불평등, 공권력의 월권과 인권 유린, 공영 매체 장악과 언론 탄압, 소수의 특권층과 소외된 다수의 문제를 민주사회에서는 보고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의 국정화는 ‘정권이 개입’해서 이 모든 것을 가리고 오직 집권자의 개인 가족사의 영광만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려 한다는 점에서, (민주화 이전의) 흑백 TV 시절로 역사를 되돌리려 한다고 비판받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사회를 ‘헬조선’이라고 가슴 아프게 표현하는 대학생들이 많은데, 그것은 좌편향의 역사교육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처럼 칼라 TV를 빼앗고 흑백 TV를 선물로 준다고 내색하는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국가 사회체제’ 속에서 자유롭게 숨을 쉬지 못하고 미래의 꿈을 포기한 채 취업전선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공로를 내세우기 이전에 그분의 과오로 인해 고통 받고 상처 받은 이들에게 사과하고 현대사의 역사를 역사가들에게 맡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치 공동체인 국가는 무엇보다는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합니다. 더 이상 ‘자유 민주주의’ 사회의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비정상적 국정화’로 국론을 분열시켜서는 안 됩니다. 비정상적 국정화는 또한 노동개혁이라는 거짓된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쉽게 ‘계약직’으로 내몰고 소모품처럼 쓰다버려도 되는 세상을 정당화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세상 모든 인간을 소중하게 창조해 내신 하느님의 눈에는 가증스럽게 비춰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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