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글 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의 명장면 중 하나는 서자 출신이었던 홍길동이 한밤중 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조선사회 신분제의 모순을 고뇌하는 장면이다.
당시 조선사회는 1415년 태종이 만든 ‘서얼금고법’에 의해 양반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첩의 소생은 관직에 나아갈 수 없도록 철저히 제한한 사회였다.
불평등한 신분제는 거대한 사회의 구조적 벽이었고, 사회가 가정이고 가정이 사회였던 조선시대는 자녀들 간에도 차별이 존재했던 현실을 고발하고 있었다.
홍길동의 부친이 그의 고민과 슬픔을 듣고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許)하노라”라고 말하였지만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에 순종하며 굴복하기 보다는 사회 구조의 변혁을 꿈꾸며 아버지와 집을 떠나 활빈당의 두령이 되어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를 통쾌하게 물리치고 이상적인 평등 사회인 율도국을 세운다.
그의 소설은 백성들의 커다란 인기를 얻었지만 정작 지은이는 역적의 누명을 쓰고 비참한 죽임을 당해야 했다.
왜 그랬을까? 홍길동전을 통해서 성리학의 질서요 세계였던 신분제를 흔들고 넘어서고자 했던 허균의 사상이 불순했기 때문이었을까? 모두가 조용히 하며 신분제의 불평등을 참고 있는데 혼자만 그 체제의 불의함을 고발했기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허균은 서자가 아닌 적자였고 당대의 유능한 학자였다. 그는 광해군 시절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다양한 서적을 접했고 구입해 왔으며 그가 읽은 서적 중에 천주교 교리서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유재론(遺才論)에서 “한 사람의 재주와 능력은 ‘하늘’에서 준 것이므로 귀한 집 자식이라 해서 재능을 더 주고 천한 집 자식이라 해서 인색하게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신분제의 모순된 인간차별을 비판하고 차별 없는 인재등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세대는 그의 말을 듣고 시대의 모순을 고치기보다는 허균 한 사람과 소수의 동조자들을 음모와 모함에 빠트려 제거함으로써 침묵 시켰다.
그 이후 시대의 지배자들도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식별해 내는 이들을 잔인하게 제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기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의 의미는 ‘구조의 모순을 보더라도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어야 한다’로 통했다.
그러나 시대의 모순을 참고 침묵하는 것이 진정 하느님의 지혜와 진리를 따르는 삶이었을까? 작금의 공권력과 물대포가 시민의 권리와 목숨을 벼랑 끝 죽음으로 몰아세워도 침묵은 지혜로운 것일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회당 한가운데 세우시고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안식일 규정을 준수하려는 세대들의 침묵을 노기띤 눈초리로 바라보셨다(마르코 3,1~6). 예수님은 안식일의 위선과 모순을 일깨우셨지만 지배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를 모의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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