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용인대리구 중심성당이기도 한 양지본당(주임 고재민 신부)은 김대건 신부가 첫 사목한 은이공소를 잇는 유서 깊은 본당이다.
은이(隱里)가 ‘숨겨진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녔듯이, 은이는 박해시대 신자들이 숨어 살던 양지교우촌이었다. 김대건 신부가 1836년 모방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이자, 돌아와 사목활동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김 신부는 은이에서 조선 땅에서는 처음으로 신자들과 미사를 드렸고, 체포되기 직전 공식적인 마지막 미사를 봉헌했다.
한국 최초의 사제를 배출한 지역인 만큼 신자들의 신심이 깊은 곳이었다. 김대건 신부의 부친인 김제준(이냐시오)과 한이형(라우렌시오)도 은이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다 박해 중 순교한 성인이다.
은이공소 신자들이 산 속에서 벗어난 것은 1927년 남곡리본당으로 설립되면서부터다. 미리내본당에서 분가한 본당은 경기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현 양지면 남곡리) 벌터에 목조성당을 세우고 축성했다.
본당은 현재 용인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본당이다. 그 역사 역시 교우촌에서 이어지지만, 용인지역 최초의 본당이었던 것은 아니다. 1913년 용인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 설립된 압고지본당이 있었지만, 양지본당이 설립되고 3년 후 주임신부가 만주로 간 이후 폐지됐다.
본당 초대주임으로 부임한 박동헌 신부는 다양한 신심운동을 전개했다. 요일별로 소년, 소녀, 청년, 노인 등 남녀노소에 따른 6개 신심단체를 구성했고, 대축일에는 토론 교리 등을 실시했다. 또 1929년에는 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70명의 신자들이 미리내의 김대건 신부 묘소를 참배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성지순례를 실시하기도 했다.
열성적인 신심활동과 전교로 본당의 신자들이 나날이 증가해 1939년에는 성당을 증축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박 신부가 앞장서 손수 터를 닦고 돌을 날라 담장을 쌓았는데, 이 담장으로 ‘돌무더기성당’이라는 별칭이 생기기도 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제의 제약을 받아 사목활동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1948년 성당을 옮기고 전교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노력으로 1953년에는 신자수가 3000명을 넘겼고, 이천·용인본당을 분당시켰다. 현재의 양지본당이라는 명칭은 1959년 용인본당이 설립되면서 변경된 이름이다.
현재 양지본당은 본당설정 70주년을 맞아 ‘성 김대건 안드레아 기념성당’으로 건축돼 1997년 최덕기 주교 주례로 봉헌된 성당이다. 본당은 용인대리구 중심본당으로서 여전히 용인지역 신앙 활성화의 중심지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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