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에 이은 분단으로 북녘에 있던 57개 본당과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잃었다. 70년이 흐른 지금 남녘 신자 대부분은 북녘 교회를 기억하지 못한다. 가톨릭신문은 서울대교구가 추진하는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운동에 공감하고 12월 6일자부터 ‘기억해야 할 북녘 본당’이라는 제목으로 북녘 본당을 소개한다.
1. 연안본당
▲소속 교구: 서울대교구
▲설립연도: 1938년
▲옛 주소: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 모정리
▲현 주소: 황해남도 연안군 연안읍 모정리
▲초대 주임: 조인원 신부(1938~1942)
▲마지막 주임: 제3대 김영식 신부(1944~1950)
박해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해를 통해 1877년 황해도 연백군에 입국한 선교사들에 의해 군청소재지 연안에 1900년 공소가 설립됐다. 그러나 관속들의 탄압에 이내 문을 닫았다. 이후 1938년 조인원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설립된 연안본당은 재봉 강습회 등을 개최하며 활발한 사목을 펼쳤다. 1942년 주임신부 공석으로 공소가 된 연안본당은 이듬해 다시 본당으로 승격됐다. 마지막 주임 김영식 신부는 1944년 11월 부임해 1950년 12월까지 재임하다 월남했다.
2. 개성본당
▲소속 교구: 서울대교구
▲설립연도: 1901년
▲옛 주소: 경기도 개성시 동본리
▲현 주소: 황해북도 개성시 동흥동
▲초대 주임: 루블레 신부(1901~1909)
▲마지막 주임: 제8대 유봉구 신부(1949)
개성본당은 1901년 약현본당(현 서울 중림동약현본당) 소속이던 송도공소를 중심으로 설립됐다. 초대 주임 루블레 신부(파리외방전교회)에 이어 1909년 르 장드르 신부가 부임할 당시 관할 공소 14개소, 신자수 1579명이 될 정도로 교세가 커졌다. 제7대 주임 방유룡 신부는 1946년 본당을 기반으로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창설했다. 제8대 주임 유봉구 신부 때 6.25를 맞았고 그에게 주어진 선택은 ‘월남’뿐이었다.
※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운동 참여신청 02-753-0815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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