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준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은 전국에서 175만여 명에 이른다. 이들 중 대부분이 하루 종일 폐지를 줍지만 한 달에 5만 원 벌기도 힘들다. 그들이 왜 그런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지, 얼마나 힘든지 그들의 삶에 다가가 봤다.
■ 삶
급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은 옷을 한가득 껴입고 왔다. 두꺼운 옷이 없어 있는 옷들을 껴입고 또 껴입었다. 눈이 내리자 어르신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추위보다 길이 미끄러워지는 것이 더 걱정이다. 실제로 폐지를 줍던 어르신들이 미끄러져 크게 다치는 경우는 흔하다.
길거리 어디에도 폐지가 보이지 않는다. 종이상자들조차 날아갈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자 할머니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저기 박스가 있다는 말에 신이나 가봤지만, 재활용쓰레기들이 담겨있었다. 이런 상자들은 따로 수거해 가는 사람이 있다. 괜히 헛걸음을 해 신호등 앞에 대기하는 시간만 길어졌다.
올해로 여든셋인 최 마리아(가명)씨는 몇 년째 폐지를 주워왔다.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삶은 점점 팍팍해져 간다. 물가는 오르지만 폐지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 그나마도 경쟁이 치열해 예전만큼 줍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오전 11시,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휴게시간이다. 누군가가 정한 시간이 아니다. 단지 그때가 노인복지회관에서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시간일 뿐이다. 복지관 곳곳에 손수레와 밀차들이 세워져 있다.
지나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폐지를 주워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는 가게나 주민들이 주는 것을 모아 끌고 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폐지를 가져간 자리는 깨끗이 청소해준다. 호의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지만 다음번에도 가져가게 해달라는 무언의 부탁이기도 하다.
정부 지원금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정부 지원금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늙은 몸을 이끌고 폐지를 주우러 나온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기도 하고, 폐지를 줍는다고 해서 정부에서 주는 여러 가지 혜택들이 취소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폐지를 팔아 번 돈이 압류되는 일도 없다. 정말 푼돈이기 때문이다.
오후 내 주운 폐지는 총 40㎏. 30㎏은 박스라 1㎏당 70원, 10㎏은 신문이라 1㎏당 80원 해서 총 2900원이다. 점심 때 먹은 삼각 김밥 2개와 컵라면 하나 값이다.
■ 고물
고물상은 폐지, 고철, 비철, 폐전선, 구리, 스테인리스, 재활용품 등을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된 고물들은 분류돼 제지공장, 철강회사, 재활용 공장 등에 판매된다.
초보자가 고물상에서 처음 맡은 일은 캔 분류였다. 철로 된 캔과 알루미늄으로 된 캔을 분리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재료 표시를 찾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일을 좀 쉽게 하려고 상표별로 모은 뒤에 한 번에 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예전에는 철로 된 깡통도 돈이 됐지만 이제는 알루미늄캔 외에는 돈이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가려서 받을 수도 없어서 그냥 받고 있다. 페트병도 마찬가지다. 부피만 크고 돈은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전선 분류작업이 한창이다. 그나마 구리가 돈이 되는 효자품목이지만 가격이 내릴 거라는 이야기가 있어 고물상 업주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잠시 뒤 한 할머니가 폐지 일부와 부대에 병을 담아 끌고 왔다. 서른한 개의 빈병, 개당 20원씩 총 620원이나 하나가 수입맥주병이라 받은 돈은 600원뿐이다. 빈병은 무거운 데다 깨지기라도 하면 값을 받을 수 없어 고물상 입장에서는 별로 선호하는 물품은 아니다.
청소기 해체 중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감겨있던 금속선이 풀리면서 무서운 속도로 눈을 향해 날아왔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칫하면 내 눈은 물론 옆에 있던 사람까지 다칠 뻔했다.
■ 연대
“장사가 잘 돼야 박스도 많이 나오는데 요즘 정말 장사가 안 돼. 박스를 볼 수가 없어”
마리아 할머니는 폐지를 주우면서 가게와 장사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이 장사가 잘 되면 폐지가 많이 나올 뿐만 아니라 서로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결코 우리들의 삶과 동떨어진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몸을 이루는 지체가 여럿이듯 각자 하는 일은 다르지만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이은영(소화데레사·수원교구 용호본당)씨는 하루도 쉴 수 있는 날이 없다. 어르신들이 폐지를 줍지 않고 쉬는 날이 정해져있지 않다보니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매일 같이 고물상을 열어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덥든 춥든 일해야 하는 현실이 고달프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고물상이라 사람을 쓸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고물의 값은 떨어지고, 요구사항은 날로 깐깐해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규모가 작은 고물상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또한 관련법이 바뀌고, 도심 내 고물상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는 주민들로 인해 고물상들이 점차 주변 지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손수레로 폐지를 옮기는 모습도 몇 년 후에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줍는 사람 따로 있고, 버리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가게 안내책자에 붙어있는 자석을 떼고 버린다거나 우편 봉투의 비닐을 떼어 내는 정도만으로도 환경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폐지를 주워 고물상으로 가지고 가는 어르신에게 집에 있는 폐지들을 정리해서 드리는 것도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폐지를 찾았다. 빈방을 찾아 헤매는 요셉과 마리아의 마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마구간의 허름한 공간이라도 내준 것처럼, 폐지 모은 것을 넘겨줬을 때 느껴졌던 작은 배려와 사랑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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