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례의 전체적 색채가 장미색으로 가득한 장미주일입니다. 장미색은 기쁨을 상징하는데, 입당송, 본기도, 화답송, 독서와 복음 말씀은 한결같이 ‘기쁨’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대림 3주일에 이처럼 기쁨을 노래하는 이유는 다가올 성탄절과 예수님의 재림이 심판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이자 기쁨임을 미리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이런 오늘 로마의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자비의 성문이 성대하게 열립니다. ‘자비의 얼굴’이라는 회칙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부터 내년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를 ‘자비의 특별 희년’으로 선포하셨는데, 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을 맞는 바로 오늘 자비의 성문을 성대하게 여십니다. 교황님께서는 이 성문을 열면서 교회가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에 선포하고, 모든 사람이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게 하자고 초대하십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이들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자비를 그대로 보여주시는 자비의 얼굴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워야 한다(루카 6,36)고 가르쳐 주시고, 또 그것을 실제 보여주셨습니다. 이 때문에 자비는 교회의 본질이며, 교회 생활의 토대입니다.
이처럼 자비의 성문이 열리는 오늘 세례자 요한은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3,11)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자신에게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라고 말하고,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고 알려 줍니다(3,13-14). 마치 세상에서 자비를 어떻게 베풀어야 할지를 알려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보다 더 큰 인물이 올 것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줍니다. 자신과 달리 하느님의 자비를 온전히 가져다줄 분,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고,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줍니다.
요한에 따르면 그분은 알곡을 당신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버리십니다(3,16-17). 사실, 이 말은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 특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모두 알고 있던 말입니다. 다만, 자신들이 알곡이며, 이방인들이 바로 쭉정이라고 생각하며, 메시아가 오시면 그들을 불태워버릴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자비는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바에 따르면 하느님은 쭉정이 취급받던, 그래서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비에서 제외될 것으로 여기던 그런 이들을 파멸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은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이시며, 그들이 돌아올 때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 자비 때문에 이 땅에 오신 분이며, 하느님 자비의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셨고, 제자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온 탕자를 맞아들이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터트리던 큰 아들처럼(루카 15,11-32), 예수님에게 불만을 터트리며 그분을 죽음으로 내몰아 버립니다. 정말 자비의 얼굴을 지니신 아버지의 얼굴을 닮지 못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들에게도 종종 발견됩니다. 자비의 성문이 활짝 열리는 오늘 자비가 진정 교회의 기초이자 본질임을 기억합시다. 우리 자신이 죄인이었다가 아버지께 돌아와 자비를 입은 이들이었음을 고백합시다. 그러면서 하느님 자비의 얼굴을 배워 다른 이들에게도 자비를 실천합시다(마태 18,23-35). 이렇게 우리 모두가 자비의 얼굴을 지니게 될 때 세상은 하느님 자비의 얼굴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참으로 기쁨이 흘러넘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장미주일인 오늘 우리 모두가 함께 기다리고 기억해야 할 바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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