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땡 : 주님의 기도 전반부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그분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그분 나라가 오시어 그분 뜻이 이 땅에 이뤄지기를 기원하는 내용이에요. 우선 ‘우리 아버지’부터 살펴볼까요?
민이 : “하늘에 계신…”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고요?
주땡 : 우리말로는 그렇지만, 사실 라틴어나 영어 기도문에는 ‘우리 아버지’가 먼저 나온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아빠 이름이 빛나세요. 아빠 나라가 오세요….” 사랑하는 자녀가 이렇게 아빠 일을 위해 먼저 기도하는데, 어느 아빠가 자녀의 부탁을 안 들어주겠습니까.
세라 : 기도 시작부터 참 친근한 느낌이네요. 저희 아빠도 제가 드리는 부탁은 뭐든지 들어주시거든요.
주땡 :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도 수녀님들 교육 때 강조하셨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기도할 때 ‘아빠’가 느껴지지 않으면 기도의 진도를 더 이상 나가지 마세요. 아빠의 느낌이 올 때까지 반복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 뒤의 기도도 소용없습니다”라고요.
세라 : 뒤에 나오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도 ‘아빠’에 대한 친근하고 지극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주땡 : 이름을 부르는 관계는 뭔가 친근함이 느껴지잖아요.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알고 부를 수 있음으로써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거죠.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해 교리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나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지듯이 직접 경험하고 체험한 바를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겠지요.
민이 : 신부님, “하늘에 계신”에서 ‘하늘’은 저 위에 있는 하늘을 말하나요?
주땡 : 여기서 ‘하늘’은 ‘하느님이 계신 곳’을 말하는데요. 이것 역시 장소라기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어요.
민이 : 그럼 뒤에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의 ‘아버지의 나라’도 같은 의미인가요?
주땡 : 아버지의 나라, 즉 하느님 나라 역시 장소라기보다 내세의 상태를 말하죠. 하느님 뜻이 어떤 방해도 없이 이뤄지며,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가장 크고 지극한 행복을 누리는 삶이 존재하는 그런 상태 말입니다.
세라 : 그 뒤에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는 이 세상이 천국처럼 되길 바라는 기도겠군요.
주땡 : 하느님의 뜻이 이미 하늘에서 이뤄지듯이 이 세상과 우리 마음속에서도 이뤄지기를 청한다는 뜻이죠. 그러기 위해서 우리 계획과 의지와 생각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겠지요.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함께 원할 때 행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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