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년이 흐른 지금 남녘 신자 대부분은 북녘 교회를 기억하지 못한다. 가톨릭신문은 서울대교구가 추진하는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운동에 공감하는 취지로 북녘 본당을 소개한다.
3. 옹진본당
▲소속교구: 서울대교구 ▲설립연도: 1939년 ▲옛 주소: 황해도 옹진군 옹진읍 온천리 ▲현 주소: 황해남도 옹진군 옹진읍 온천리 ▲초대 주임: 김피득 신부(1939~1942) ▲마지막 주임: 제5대 이계광 신부(1950)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으로 1939년 5월 해주본당에서 분리, 설립됐다. 옹진본당이 위치했던 옹진군 옹진읍 온천리는 지금도 지명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본당이 폐쇄돼 이북의 다른 본당들처럼 기능이 정지됐다.
1945년 해방과 남북 분단 직후 옹진본당은 38선 이남에 속했다. 제5대 주임 이계광 신부는 부임한 지 약 한 달 만에 6·25 전쟁이 일어나 피란길에 올랐고 다시 본당에 복귀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53년 7월 휴전 이후 옹진본당은 이북에 속하게 됐다.
4. 해주본당
▲소속교구: 서울대교구 ▲설립연도: 1912년 ▲옛 주소: 황해도 해주시 장춘동 ▲현 주소: 황해남도 해주시 장춘동 ▲초대 주임: 빌렘 신부(1912~1914) ▲마지막 주임: 제10대 한윤승 신부(1948~1949)
해주본당은 1912년 9월 황해도 청계동본당 소속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곳으로 해주시 모든 지역과 벽성군 일부 지역을 관할했다. 초대 주임 빌렘 신부는 안중근(토마스) 의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어 한국 신자들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제9대 김철규 신부는 재임 중이던 1946년 8월 월남을 시도하다 실패해 형무소에 수감되는 고초를 겪다 이듬해 월남했다. 주임신부 자리가 공석이 되자 인근 사리원본당에서 해주본당 사목도 담당했다. 1948년 9월 제10대 주임 한윤승 신부가 부임해 월남을 시도하는 신자들의 편의를 제공하면서 북한 당국의 감시를 받게 됐다. 결국 한 신부는 1949년 5월 체포돼 해주본당도 폐쇄되고 만다.
‘북녘 본당 갖기’ 운동 참여신청 02-753-0815 서울대교구 민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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