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과 기부 문화가 다채로워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하더라도 기관과 사람을 지정해 후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면서도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착한 소비’가 각광받고 있다.
한국 천주교의 중심지인 서울 명동대성당 인근에도 이웃을 돕고 사랑을 나누는 착한 공간들이 많다.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대림시기, 자선주일을 맞아 주일날, 기자가 직접 명동에서 착한 하루를 실천했다. 명동으로 출발~!
사랑에 날개를 달다
오후 1시30분이 넘어 명동대성당 교중미사가 끝나고 가톨릭회관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한 수공예 성물가게 ‘주날개밑’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평소 주중에만 운영하지만 12월에는 일요일에 문을 연다고 한다. 이곳은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인증하는 나눔가게(본부에 1년 이상 정기후원 혹은 1000만 원 이상 기부한 사업장) 29호점이다.
사장 전남이(리디아·51)씨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2009년 성물가게를 열었다. 초심 그대로 그는 가게 수익금 일부를 본부 외에도 많은 기관·단체에 후원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결혼이민여성 1명을 고용,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가난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전씨의 따뜻한 마음 덕분인지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미사 후 이곳에 방문한 김연주(엘리사벳·26)씨는 “나눔의 의미가 담겨서 그런지 더 마음이 가고 똑같은 것도 이곳에서 사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기자 역시 나눔에 동참하고자 좋은 글귀가 새겨진 통통십자가(9000원)를 선택했다.
가게 계산대 앞에 놓인 ‘나눔 저금통’ ‘한끼 100원 나누기 저금통’ ‘꽃동네 저금통’에는 손님들이 넣은 지폐가 골고루 들어있었다. ‘그 사장님에, 그 고객’이었다.
※문의 02-777-0122 주날개밑
커피는 희망을 싣고
주날개밑을 나와 회관 1층으로 발길을 돌렸다.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향긋한 커피향에 기분이 좋아졌다. 커피향의 근원지는 가톨릭바리스타협회가 201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카페 하랑’이었다.
평일에는 회관에 미사, 강의. 모임 등이 많아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지만 일요일에는 한적했다. 연중무휴로 운영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주일에는 알음알음 찾아오는 고객들이 전부라고 한다.
포근해진 날씨에 기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5800원)을 주문했다. 맛이 좋기로 소문난 하랑의 커피는 명불허전이었다. 하지만 맛보다도 더 큰 ‘사랑’이 하랑의 가치를 알려줬다.
이곳 바리스타들은 전부 월급 한 푼 받지 않는 봉사자들이다. 대신 수익금 전액을 10여 곳의 기관·단체에 후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적인 후원을 넘어 직업교육으로 사회 경제적 약자들의 자립을 돕기 시작했다.
가톨릭바리스타협회 김미선(마멜다·48) 회장은 “협회 후원으로 자립한 미혼모가 보낸 손편지를 보고 정말 마음이 찡했다”며 “우리의 작은 봉사가 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된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의 02-727-2494 카페 하랑
생명은 나누는 거야!
사랑이 듬뿍 담긴 착한 커피를 마신 후 명동성당 1898광장에 마련돼 있는 ‘가톨릭정보문화·생명나눔센터’를 찾아갔다. 교회의 생명나눔운동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참여도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노란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센터 안에 있는 가톨릭에 관한 정보들을 살펴봤다. 지도와 영상 자료를 비롯해 생명나눔운동 자료들도 많았다.
평소 장기기증과 조혈모세포기증에 관심만 갖고 있던 기자는 신청서를 꺼내 유심히 읽어보고는 바로 작성하고 채혈을 했다. 신청 방법을 몰라 생각으로만 그쳤던 생명나눔운동 동참을 센터 방문을 계기로 결심한 것이다. 기자와 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2014년 생긴 센터에서 장기기증을 신청한 인원만 646명(2015년 6월 현재)이고, 조혈모세포 기증을 신청한 사람은 53명이다.
이곳에는 임상병리사가 상시 대기하고 있어, 장기기증뿐 아니라 조혈모세포기증, 헌혈, 제대혈기증 안내 등 전반적인 생명나눔운동 관련 상담과 등록 신청이 가능하다.
※문의 1599-3042 가톨릭정보문화·생명나눔센터
착한 먹거리, 착한 사람들
명동에서의 착한 하루 마지막 방문지는 교구 환경사목위·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가 운영하는 직매장 ‘하늘·땅·물·벗’(점장 서해순)이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사람을 인증하는 가농인증제’, ‘우리농 한우’ ‘즐거운 불편’ 등을 소개하는 유인물이 눈길을 끈다. 먹거리마저도 신뢰할 수 없게 돼버린 이 시대에 생명의 가치를 중심에 두는 우리농본부가 운영한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서 사는 제품만큼은 믿음이 갔다.
남편과 함께 장을 보러 온 김지연(데클라·55)씨는 “농민들과 연대할 수 있고 가톨릭 공동체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믿고 사먹는다”고 말했다.
매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상품들이 있었다. 사과와 배 등 과일과 채소, 냉장육은 물론 기자가 좋아하는 빵과 과자 등 간식거리가 풍성했다. 그 중에서도 배즙(1봉 800원)을 선택했다. 집에 있는 가족들을 떠올리면서 몇 봉지를 구입했다.
※문의 02-727-2280 하늘·땅·물·벗 명동매장
착한 하루, 평일에도 이어진다
권선징악은 고금이래 진리다. ‘착한’ 삶은, 반드시 내가 생각한대로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언제든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받는다. 명동서 둘러보고 체험한 ‘착한 소비’는 무엇보다 사람과 생명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아기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대림시기에 착한 소비는 아주 좋은 신앙 실천의 한 가지 방법이다.
명동에서의 착한 소비 실천은 주말만 아니라 평일에도 가능하다. 교구 여성연합회가 운영하는 재활용품 상설매장 ‘사랑마트’가 회관 지하 1층에 있다. 의류, 신발은 물론 주방도구에 이르는 다양한 물품은 전부 기증품들이다. 수익금은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되며, 이용시간은 매주 평일과 토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다.
※문의 02-727-2394 사랑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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