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김운회 주교) 소속 주교단의 12월 1~4일 북한 방문은 광복과 분단 70년 만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남북 화해와 협력에 새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평양에서 중국 베이징을 거쳐 12월 5일 오후 김포공항에 도착한 방북단장 김희중 대주교(주교회의 의장)를 비롯한 김운회 주교(춘천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대구대교구장),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 박현동 아빠스(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등 방북 주교단의 밝은 표정은 ‘성과’가 있었음을 암시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입국장에서 “남북 교류와 협력 확대를 위한 협의를 진행했고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면서도 “자세한 내용은 기자회견에서 밝히겠다”고 말을 아꼈다.
주교회의는 12월 7일 오후 1시30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4층 강당에서 ‘방북 후속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김희중 대주교와 방북에 동행한 김준철 신부(주교회의 사무처장), 류한영 신부(주교회의 관리국장), 송용민 신부(주교회의 사무국장), 이정주 신부(주교회의 홍보국장)가 배석했다.
남측 사제 장충성당 파견 정례화 논의
무엇보다 서울대교구 사제를 매년 천주교 주요 대축일에 평양 장충성당에 파견해 정기적인 미사 봉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평양 소재 유일한 성당인 장충성당에서는 남한 사제가 북한을 방문하는 기회에 부정기적으로 미사가 봉헌되곤 했다. 그러나 김 대주교는 “천주교 4대 대축일을 포함해 다른 대축일에도 남한 사제가 평양 장충성당을 방문해 미사 봉헌을 ‘정례화’ 할 수 있게 된 것이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대주교는 12월 1일 김포공항에서 평양으로 출국하면서도 “남한 사제가 평양에서 미사를 정례적으로 봉헌하는 문제를 이전부터 여러 차례 북한 측과 협의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천주교 4대 대축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예수 부활 대축일(4월 초 전후),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예수 성탄 대축일(12월 25일)이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가까운 대축일은 예수 성탄 대축일이지만 김 대주교는 “내년 부활 대축일부터 서울대교구 사제가 평양에 파견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북 당국자 간에 이견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서울대교구 사제가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종교적 차원의 교류여서 ‘신부님은 언제든지 오시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들었지만 북한 당국의 정책적 판단과 남북 당국자 간 이견 발생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평양 장충성당에 서울대교구 사제를 파견하는 이유는 서울대교구장이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주교는 서울대교구와의 협력문제에 대해 “2011년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대표회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할 때 당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과 이 문제를 상의했고 이번 방북 전후에도 염수정 추기경과 같은 내용의 협의를 해 협력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제 파견 규모에 대해서는 “사제 1~2명과 수행인원 1~2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북측 신자 주교회의에 초청
방북 실무단장을 맡은 김준철 신부는 방북 주교단과 상의해 조선카톨릭교협회(중앙위원회 위원장 강지영)의 공식 초청에 부응하듯 북측 신자들을 주교회의에 초청했다. “앞으로 남북 신자들 간의 활발한 교류가 원활히 이뤄지길 희망한다”는 말도 조선카톨릭교협회에 전달했다. 북측 신자들은 주교회의 방문 초청에 대해 “여건이 되면 방문하겠다”고 원칙적 동의를 드러냈다.
또한 방북 실무진이 주교회의 차원에서 이뤄진 이번 방북을 통해 향후 조선카톨릭교협회와 한국 천주교회 간의 인도적 협력과 신자 상호간 교류는 주교회의를 단일 창구로 삼자고 제안한 점도 관심을 끈다. 주교회의와 각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및 통일사목 관련 기관단체들의 조율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편 방북단은 북측 신자들과 프란치스코 교황을 화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남북 사이에 교류 협력이 잘 이뤄지면 교황님의 북한 방문도 추진해 보자”는 덕담을 주고받았다.
평양 장충성당 보수 논의
주교단의 방북 중요 일정 중 하나는 장충성당 보수문제를 협의하는 것이었다. 1988년 지어진 장충성당은 평양 유일의 성당으로 북한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보금자리 같은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나 건축된 지 30년 가까이 흐르다 보니 보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협소한 공간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방북 셋째 날인 12월 3일 장충성당을 방문해 미사를 봉헌한 방북단은 장충성당 곳곳을 살펴보고 보수 문제를 북측과 상의했다. 장충성당 김철웅(프란치스코) 회장과 신자들이 방북단을 따뜻이 맞이했으며 북측은 김 대주교에게 “예비신자에게 교리를 가르칠 학습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류한영 신부는 장충성당 보수와 지원 방안에 대해 “우리 정부와 협력해서 장충성당을 도울 방침이고 한국 카리타스 인터내셔널을 통해서도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류 신부는 “장충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한 북한 신자들이 기도문을 정확히 외우는 것은 물론 진실된 마음으로 신앙생활하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며 북한에 가톨릭 신앙이 살아 있음을 내비쳤다. 송용민 신부 역시 “장충성당에 신자들의 세례대장이 비치돼 있는 것을 확인했고 제의실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는 말로 북한 신자들의 신앙생활 단면을 제시했다.
방북단은 평양 장충성당 외에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현 원산농과대학)도 방문하기 원했지만 북한 입국 전날 내린 큰 눈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방북단이 바라본 평양의 모습은
김 대주교는 “4년 전 방문했던 평양은 이번에 가서 보니 많이 달라져 있었다”며 “평양 거리에 대규모 아파트가 세워지거나 평양 순안공항이 현대식으로 단장됐다”고 소개했다. 평양의 외형적 변화보다 순안공항에서 물품 검색을 간략히 하거나 평양 시내에서 휴대폰과 카메라 사용을 자유롭게 하도록 허용한 것이 보다 큰 북한의 변화로 인식됐다.
방북단은 12월 1일 방북 첫 날 조선카톨릭교협회 강지영(바오로) 위원장 등과 환영 만찬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둘째 날에는 모란봉 구역 을밀대와 문수 물놀이장을 둘러본 뒤 평양양로원과 평양애육원(유치원과 유아원) 등 사회복지시설도 찾았다. 특히 북한의 내각에서도 이번 방북에 깊은 관심을 표현해 조선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대 부위원장이 방북단을 만수대 의사당에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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