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년이 흐른 지금 남녘 신자 대부분은 북녘 교회를 기억하지 못한다. 가톨릭신문은 서울대교구가 추진하는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운동에 공감하는 취지로 북녘 본당을 소개한다.
5. 청계동본당
▲소속교구: 서울대교구 ▲설립연도: 1898년
▲옛 주소: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리 ▲현 주소: 황해남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리 ▲초대 겸 마지막 주임: 빌렘 신부(1898~1912)
청계동본당은 1898년 4월 황해도 지역 최초의 본당인 매화동본당에서 분리, 설정됐다. 청계동본당은 안중근 의사가 빌렘 신부로부터 토마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선교 거점으로 삼았던 본당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신천, 해주, 봉산, 송화, 문화군 일대의 넓은 구역을 관할하다 초대 주임 빌렘 신부가 1912년 9월 청계동을 떠나 해주 지역을 담당하게 되면서 청계동본당은 해주본당 관할 공소가 됐다. 1949년 공산정권에 의해 해주본당이 폐쇄되면서 청계동공소도 운명을 같이했다.
6. 장연본당
▲소속교구: 서울대교구 ▲설립연도: 1898년 ▲옛 주소: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읍서리 ▲현 주소: 황해남도 장연군 장연읍 읍서리 ▲초대 주임: 파이야스 신부(1898~1901) ▲마지막 주임: 제10대 강주희 신부(1942~1950)
1898년 본당 설립 당시 ‘두섭’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던 장연본당은 장연군, 문화군 전역과 은율군, 승화군, 해주군 일부를 관할했다.
마지막 주임인 제10대 강주희 신부가 1942년 1월 부임한 뒤 1945년 8·15 해방까지 3년여간 장연본당은 평온한 상태가 유지됐다. 그러나 그 후 과수원 등 수만 평의 교회 토지가 무상 몰수당하는 등 탄압이 시작됐다. 강 신부도 1948년부터 정치보위부의 엄중한 감시를 받게 됐다. 1950년 6·25전쟁 발발 후에도 1·4 후퇴 때까지 본당을 유지하다 결국 강 신부가 피란길에 오르면서 침묵의 본당이 됐다.
‘북녘 본당 갖기’ 운동 참여신청 02-753-0815 서울대교구 민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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