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연구실에서 수업을 준비하던 중에 요란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수화기를 들자 아랍에미리트(UAE)의 아크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오랜 벗, 동기생 K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정답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뒤 통화를 마무리할 무렵, 동기생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귀국하면 꼭 만나자. 그리고 다음엔 네가 먼저 연락 좀 해라. 네 전화 기다리다가 네 목소리도 잊어버리겠다. 그럼 안녕!”
통화를 마친 후, 동기생 K와 신앙생활을 함께했던 생도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신앙심이 투철했던 그와 화랑대본당 ‘가톨릭 생도회’에서 간부생도로 함께 활동했고, 문화체육활동부서인 가톨릭부에서는 성경 공부도 같이 했습니다. 그때를 되돌아보니 재미있는 일화도 많았습니다. 사제관에서 신부님께서 쟁여 놓은 라면과 과자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고, 수녀님과의 가톨릭 교리 수업 중에는 딴짓을 하다가 꾸중도 들었으며, 수요일 저녁미사 시간에는 서서 졸다가 넘어질 뻔도 했습니다. 가톨릭 동기생들과 동고동락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이제는 아득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동기생 K가 통화 마지막에 했던 한마디, ‘기다리지 말고 먼저 연락하라’는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제가 먼저 용기를 내어 남들에게 살갑게 안부를 묻기보다는, 남들이 먼저 제게 다가와 인사를 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기생이나 친구들이 먼저 제게 전화하길 기다렸고, 그렇지 않으면 외롭게 느껴지기까지도 했습니다. K와 통화를 계기로, 환한 미소로 먼저 다가가 타인을 따뜻하게 맞아주지 못했던 제 삶을 반성하게 됐습니다.
교회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대림절을 맞아, 우리는 인류 구원을 위해 세상의 빛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며, 저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 보시기에 합당한 몸과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다가가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빛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총에 감사드리며,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이제는 제가 지난 한 해 동안 받았던 사랑을 이웃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 저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화랑대본당 신자들, 육사 전우들과 국군 장병들에게 곰살궂게 다가가 아기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나누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추운 날씨에 전후방 각지에서 조국 수호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가톨릭 국군 장병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 많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십시오.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과 지지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해 동안 부족한 제 글을 읽고 많은 격려를 보내주신 독자분들께도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집필해 주신 이강호 소령님과 애독해 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회부터는 새로운 필진으로 병영일기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