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트리 없는 예수 성탄 대축일은 배 없는 항구처럼 허전하고 아쉽다. 성탄절을 일찌감치 앞두고 성탄 트리를 만드는 이유다. 모든 본당에서 나름의 의미가 담긴 성탄 트리를 온 정성을 다해 만들지만 군본당의 성탄 트리는 남다르다. 병사로 입대해 21개월 간 군복무하면서 성탄을 맞이하는 것은 단 두 번뿐이기 때문이다. 군복을 입고 맞이하는 첫 성탄 다음은 마지막 성탄이다. 그래서 군본당의 성탄은 특별하다.
12월 12일 오전. 서울과 경기도 과천에 걸쳐 있는 수도방위사령부 방패본당(주임 길기문 신부) 군종병 조태경(사도 요한) 병장과 수방사 각 예하부대 군종병들이 방패성당에 모였다. 2주 앞으로 다가온 성탄 대축일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성모회 회원과 엄마를 따라온 유치원 꼬마도 함께했다. 제대 앞에는 성탄 트리를 장식할 방울과 별, 눈꽃이 가득했다. 성모회 회원들이 부지런히 시장을 돌며 미리 준비한 것이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는 각자의 소속 부대에서 열심히 생활하던 군종병들이 ‘사도회’ 모임을 하는 시간. 이날 사도회 모임에서는 방패본당을 환하게 밝힐 성탄 트리를 만들고 성탄절에 방패성당을 찾을 병사들에게 줄 선물 포장을 하느라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 소속으로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생인 조태경 병장이 성탄 트리 꾸미기와 선물 상자 포장을 진두지휘 했다. 내년 3월 2일 전역을 앞둔 조 병장은 지난해 성탄 트리를 만들어 본 경험과 노하우로 능수능란하게 다른 군종병들과 호흡을 척척 맞췄다.
성탄 트리에 먼저 꼬마전구가 달린 전선을 감았다. 엉켜 있는 전선을 찬찬히 풀고 트리에 골고루 감은 뒤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자 초록, 파랑, 노랑 전구에 반짝 반짝 불이 들어왔다. 꼬마전구에 불이 들어오기까지도 플러그를 몇 번 꼽았다 뺐다를 거듭했다. 불이 들어오는 순간 군종병들이 일제히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어디에 방울을 달지, 별을 걸지 고심이 이어졌다.
유치원생 꼬마도 한몫 하며 “저 꼭대기에 별을 달아주세요”라고 자기 소망을 표현했다. 조 병장은 “동료 군종병들과 즐겁게 성탄을 준비하며 트리를 만드는 것이 그저 기쁠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세례를 받고 수방사 헌병단 본부대에 배치돼 군종병이 된 이색적 경력을 지닌 한산(프란치스코) 상병도 “군대 와서 가톨릭 신자가 되고 처음 맞이하는 성탄에 기대와 설렘이 교차한다”고 밝혔다.
성탄 트리 만들기가 끝나고 군종병들은 성탄절에 방패성당을 찾을 병사들에게 줄 선물 상자를 포장했다. 상자 안에는 병사들이 길기문 신부에게 요청한 선물들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빨래 세제와 핸드크림, 병사들이 맛본 적 없는 과자 등이다. 수방사에는 벌써 선물 상자에 대한 소문이 퍼져 병사들 사이에 흥분이 감돌고 있었다.
길 신부는 이번 성탄에 병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인 휴가증도 두툼하게 모아놨다. 휴가증이 꼭 필요한 병사가 누구인지 길 신부의 행복한 고민이 성탄 전야까지 이어질 듯하다.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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