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은 대림기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어려운 이웃들을 직접 찾아가거나 그들을 직접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미처 알지 못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대림 제4주에는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을 통해 그런 이웃들에게도 나눔과 사랑이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겨울 날씨보다 차가운 마음
바보의 나눔은 12월 6일부터 31일까지 총 22회에 걸쳐 거리 모금에 나선다. 평일에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주일에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명동성당 인근에서 하고 있다.
보행자 신호에 따라 남대문세무서 방향에서 50여 명이 넘는 일반인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한 손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사진이 담긴 안내판을, 다른 한 손에는 손난로와 함께 묶인 안내문들을 들고 명동성당 앞 들머리 광장에 나섰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도 그리 차지 않은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멀리서 기자를 바라본 시민들은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쳐다보거나 고개를 돌리고 슬금슬금 옆길로 비켜가기 시작했다.
12월 10일 살짝 비가 내려 계획됐던 모금 활동이 11일로 미뤄졌다. 이 정도 비는 그냥 맞으면서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간신히 시간을 내 좀 쉴까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날 취재 연기가 더욱 속이 쓰렸다. 그러나 좋은 날씨에도 이렇게 서글픈 마음이 드는데 궂은 날씨였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차라리 미뤄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금활동 전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봉사자 여러분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라 했던 말이 떠올랐다. 10명 중 7~8명은 외면할거라는 이야기, 마치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보듯이 지나쳐 간다는 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모금 전에는 나눠줄 손난로 개수를 보면서 너무 적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다 나눠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문득 교리교사의 기도가 생각났다. ‘배반자의 쌀쌀한 얼굴도 마다하지 않으신 당신의 그 친절을 저에게도 주시어’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성호를 긋고 다시 나섰다.
● 용기를 내어라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걷는 모녀가 보여 다가갔다. “따스한 나눔, 바보의 나눔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설문조사에 응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망설였지만 딸이 어서 가서 해주자고 나섰다. 그런데 걷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딸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이게 얼마나 힘들고 부끄러운 일인지 알아? 이런 거 해달라고 하면 꼭 해줘야해.”
딸의 재촉에 어머니는 천천히 설문조사 판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항목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어디에 스티커를 붙일 것인지 물어봤다. 괜히 눈물이 났다. 고마웠고, 또 고마웠다. ‘냉담한 그들의 얼굴이 당신께 대한 관심으로 피어나게 해 주소서’ 속으로 기도하며 다시 나섰다.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평상시 잘 웃지 않지만 이날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싶었다. 한 사람이라도 사랑 나눔에 동참하게 하고 싶어서였다. “설문조사에 응해주세요”라는 말을 “스티커를 통해 저희를 응원해 주세요”라는 말로 바꾸었다. 더 이상 부끄럽지도 위축되지도 않았다.
바보의 나눔은 아동·청소년, 노인, 장애인, 미혼모, 환자, 다문화, 해외개발도상국 등 다양한 이웃들을 돕고 있다. 한 달에 1만원의 후원회비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방과 후 갈 곳 없는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공부방에 월세를 지원해 줄 수 있고, 미혼모 여성들의 육아를 지원하고 그들의 자립을 도울 수 있다. 병이 완치되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학교에 다시 간 아이들이 학업부진으로 인해 힘들어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고, 성인장애인들의 취업을 이뤄줄 수도 있다. 단돈 1만원에 그들의 삶이 나아진다.
● 그래도 희망입니다
“나눔의 실천을 아이에게 가르쳐주세요.”
모금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응해줬던 이들은 아이와 함께 나온 부모들이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아이들이 보다 더 온유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꺼이 기부에 동참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환자들을 돕고 싶다고 스티커를 붙이는 아이를 바라보며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바보의 나눔이 이날 행한 ‘어떤 이웃을 돕고 싶으세요?’라는 설문조사에 40%가 모든 이웃을 돕고 싶다고 대답했고, 그 다음으로 장애인, 아동·청소년이 뒤를 이었다. 노인과 다문화, 해외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았다.
‘쾅’하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거리에서 성당 방향으로 불던 바람이 갑자기 반대로 불면서 모금함이 떨어져 깨졌다. 잠시 모금 활동을 멈추고 주섬주섬 물건들을 줍고, 정리를 시작했다. 부탁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시민들이 와서 도움을 줬다.
“점심 먹고 오면서 할게요”라는 말에 ‘설마 오겠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실제로 와서 하는 분들도 계셨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라 하지만 아직 이 땅에는 분명히 다른 이들의 아픔에 안타까워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보의 나눔은 후원액 대비 8.48%만 운영비 및 모금·배분경비로 사용하고 나머지 91.5%는 모두 지원이 필요한 다양한 대상에게 배분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뜻에 따라 인종, 국가, 종교, 이념에 관계없이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나누고 있다. 또한 ‘소규모단체 지원 사업’을 통해 비영리민간단체와 시설, 센터 등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바보의 나눔을 통해 도움을 받은 어느 미혼모 여성의 글을 보았다. “바보의 나눔의 도움을 받으니 작은 희망이 보입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만큼 힘내서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해요.”
이번 체험을 통해 나의 작은 노력이 그들에게 도움이 됐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문이 열린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세상에 주님의 자비가 가득하길.
※문의 02-727-2506 (재)바보의 나눔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