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번역 성경이 나오기 전까지 공동번역 성서는 신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성경 공부를 위해 공동번역을 찾는 이들은 줄지 않고 있다.
공동번역의 장점은 ‘쉽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번역이 잘 됐다는 것은 원문에 대한 번역자의 이해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공동번역 성서가 나오는데 큰 공이 있는 사람 중 한 분이 성서학자이자 성모영보수녀회 설립자 선종완 신부이다.
선 신부는 1915년 8월 8일 강원도 원주군 신림면 용소막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의 3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집안의 대를 이어주길 간절히 원했던 부친의 애원을 물리치고 사제의 길을 선택했다.
선 신부는 성경 연구에 전념하고자 했지만 당시는 히브리어와 같은 고전어를 배울 길이 마땅치 않아 스스로 책을 구입해 독학으로 공부해야만 했다.
재능과 성실한 노력으로 구약성경 연구에 필요한 언어들을 습득한 그는 1942년 사제품을 받고, 1946년 천주공교신학교(현 가톨릭대학 성신교정) 교수로 활동하다 1948년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이어 1952년 6월까지 예루살렘 성서연구소에서 성서고고학을 연구하고 귀국해 가톨릭대학(현 성신교정)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선 신부는 1955년 3월부터 구약성경 번역을 시작해 1963년까지 제2경전인 바룩서를 비롯해 구약 16권을 번역·발간했다.
성경 번역에 일생을 바치던 그가 여자 수도회를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한 시기는 1954년 경 가르멜 여자 수도원의 고해 신부로 있을 때였다. 그는 수도 성소가 있어도 가난하고 학력이 모자라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성경 안에서 완덕에 이를 수 있도록 돕고자 수녀회 설립을 꿈꿨다.
그 무렵 선 신부는 성경 번역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메추라기 사육을 시작했는데, 이 사업이 번창해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서도 성경 번역 비용을 충당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유산으로 물려받은 재산을 정리해 수녀회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메추라기 사육을 도와주던 3명의 자매들을 첫 입회자로 해 1960년 3월 25일 ‘성모 영보 수녀회’를 설립했다.
선 신부는 1968년 성경 공동번역 가톨릭 측 전문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1976년 7월 11일, 간암으로 선종하기 며칠 전까지 공동번역 원고를 마지막 한 장까지 탈고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선종완 신부의 묘지는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본원이 있는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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