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지옥불반도’, ‘흙수저’ 한동안 인터넷을 달구었고, 지금도 널리 오르내리고 있는 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여전히 교육이 아이들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또 실제로 바꾸고 있는 이들, 절망의 세대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 바로 CLC희망학교용인(교장 최혜란) 가족들이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
1990년대 이전에는 부모의 경제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통해서 빈곤의 대물림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점차 교육의 중심이 공교육에서 사교육으로 이동하면서 부모의 경제수준에 따라 청소년들의 교육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또한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에 가는 것이 보편화됨에 따라, 학원에 갈 수 없는 형편의 아이들은 학업부진은 물론 소외감마저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부모들도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비싼 학원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부모가정이나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은 더욱 크다. 문제는 이런 압박감이 자녀들에게 표출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
CLC(Christian Life Community)는 이냐시오 영성을 사는 국제 평신도 공동체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평신도들의 삶을 쇄신해 ‘세상 속의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단체다. 한국에서는 서울대교구, 대구대교구, 수원교구, 인천교구의 인준을 받아 CLC지역아동센터, CLC다문화아동센터, CLC이주민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고, 특히 CLC희망학교를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복음 정신과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함께 울어주다
수원교구 용인에 CLC희망학교가 들어서기까지 여러 조사들이 먼저 이뤄졌다. 한부모가정 비율이 높고, 청소년 전용기관이 없는 지역을 찾아 희망학교가 문을 열었다.
인근 포곡중학교에서 교육복지사와 학교장 추천을 받은 대상자들은 하교 후 희망학교에 와 영어·수학과 같은 교과목을 공부함은 물론 독서모임을 통해 인문학 강의와 논술, 토론 등에도 참여한다. 격주 토요일에는 멘토들과 함께 댄스, 미술, 체육 등의 시간도 갖는다.
합창연습 때 웃고 까불대는 아이들이지만 그들의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희망학교에 다닌 아이 중에는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아버지의 학대와 학교에서의 왕따 경험으로 인해 2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학생도 있었고, 상처와 좌절감으로 어른들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학생도 있었다.
희망학교의 한 학생이 쓴 ‘울어도 괜찮아’라는 제목의 시에서 “슬플 땐 울어도 괜찮아 하지만 누군가의 위로를 받으며 울길 혼자서 울면 쓸쓸하자나”라는 말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른다.
희망학교 선생님들은 먼저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노력한다. 정서적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학습에 대한 욕구가 올라 학업성적이 자연스레 오를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부모가 변해야 자녀들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 학부모회를 조직하고, 부모교육과 가족캠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일부 학생의 경우 학업 성취도가 30~40%까지 성장했고, 많은 학생들이 정서적으로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다
희망학교는 수준별 맞춤수업과 3~6개월 단위의 목표설정, 평가 및 피드백 등을 통해 중장기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실력이 늘자 자신감이 붙고, 자신감이 붙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희망학교 선생님들의 가장 큰 보람이다.
아이들 스스로 희망학교에 대한 추천서를 쓴 내용들을 읽어보니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너희도 할 수 있다”는 격려를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었다.
희망학교는 아이들의 시야를 보다 넓혀주기 위한 다양한 경험들도 제공한다. 뮤지컬 공연 감상, 방송국 견학, 예술의 전당 방문 등 문화체험은 물론 장애아동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실시하기도 했다. 특히 봉사활동은 아이들에게 자신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돌아보고, 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심어주기도 했다. 소설가를 꿈꾸고 있는 학생은 봉사 활동 후 “희망의 글을 쓰고 싶다”는 봉사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희망을 노래하다
지난 12월 19일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로 36길 9-3 사랑의 힘 지하공연장에서 열린 CLC희망학교 연합송년회는 학생들과 선생님, 멘토링 봉사자, 학부모 모두의 축제였다.
CLC희망학교용인 학생들도 준비한 춤과 합창을 선보였다. 공연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학생들이 쓴 시들이 전시돼 있었다. 글 곳곳에서 엿보인 아픔과 슬픔은 무대에서 기쁨과 환희로 변해 있었다.
희망학교는 회복(Healing), 이겨냄(Overcoming), 열정(Passionate), 미래에 대한 계획(Expecting)을 통해 희망(HOPE)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CLC희망학교용인 이진(안나) 센터장은 “아이들을 좌절하게 하고 자신의 가치를 제한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현실들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힘을 불어넣어주는 일이 희망학교가 해야할 일”이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지만,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 준다면 아이들은 분명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 고 말했다.
CLC희망학교용인 최혜란(막달레나) 교장은 “희망학교는 특별한 교육을 실시하기보다는 기초적인 교육을 통해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잡아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그동안 받지 못했던 교육의 기회를 몇 배로 주는데 집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사랑받고 큰 아이들은 사랑을 나눌 줄 알고, 아파 본 아이들은 다른 이들의 아픔을 돌볼 줄 안다. 희망학교의 가족들은 오늘도 함께 희망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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