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0년이 흐른 지금 남녘 신자 대부분은 북녘 교회를 기억하지 못한다. 가톨릭신문은 서울대교구가 추진하는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운동에 공감하는 취지로 북녘 본당을 소개한다.
7. 신천본당
▲소속 교구: 서울대교구
▲설립연도: 1930년
▲옛 주소: 황해도 신천군 신천읍 사직리
▲현 주소: 황해남도 신천군 신천읍 사직리
▲초대 주임: 신성우 신부(1930~1931)
▲마지막 주임: 제6대 구천우 신부(1941~1949)
1930년 신천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신천본당은 초대 주임으로 신성우 신부가 부임해 150평 부지에 성당을 건립하면서 본당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년 간의 짧은 임기를 마친 신 신부에 이어 제2대 주임이 된 이기준 신부(1931~1935) 재임 기간은 신천본당의 조심스런 성장기였다. 이 신부는 사제관과 종탑, 감실을 마련했다. 1932년 11월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을 초청했다.
그러나 제6대 주임 구천우 신부가 1949년 초 내무서로 연행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해 월남한 후 후임 주임신부가 더 이상 파견되지 못했다.
8. 송화본당
▲소속 교구: 서울대교구
▲설립연도: 1939년
▲옛 주소: 황해도 송화군 송화면 읍내리
▲현 주소: 황해남도 송화군 송화읍 읍내리
▲초대 주임: 박우철 신부(1939~1941)
▲마지막 주임: 제3대 서기창 신부(1944~1950)
송화본당은 1939년 7월 장연본당 관할 공소에서 승격돼 송화군 전 지역을 관할했다. 쇠골, 안농리, 풍천읍, 용수리, 월현리에 공소 5군데를 두고 있었다.
1942년 5월부터 1944년 9월까지 주임신부 공석으로 장연본당에서 임시로 송화본당 사목을 담당해야 했다. 1944년 제3대 주임 서기창 신부가 부임하며 정상적인 기능을 되찾았지만 분단에 이은 북한 정권 수립으로 고초를 겪게 됐다.
6.25전쟁 발발 후에는 성당 건물이 징발당하면서 신자 임능익(베드로)의 집을 임시성전으로 삼았다.
그러나 서 신부가 1950년 9월 정치보위부에 연행된 뒤 피살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운동 참여신청 02-753-0815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바로잡습니다
12월 13일자 3면 ‘기억해야 할 북녘 본당’ 기사 중 옹진본당의 연혁이 잘못 게재돼 바로잡습니다. 옹진본당 연혁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속교구: 서울대교구 ▲설립연도: 1939년 ▲옛 주소: 황해도 옹진군 옹진읍 온천리 ▲현 주소: 황해남도 옹진군 옹진읍 온천리 ▲초대 주임: 김피득 신부(1939~1942) ▲마지막 주임: 제5대 이계광 신부(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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