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신부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성지는 아마도 그가 묻힌 ‘미리내 성지’일 것이다. 신자들은 전국 곳곳에 성인의 발자취가 남은 곳을 순례하며 기도하곤 한다. 특히 성인이 박해를 피해 생활하고 사목하던 용인지역에는 널리 알려진 성지 외에도 성인의 생애를 기억할 수 있는 곳이 많다. 그가 어린 시절 생활하던 골배마실과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은이성지 등이 그렇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기도 용인시 이동연 묵리에 있는 한덕골에서도 성인을 기억할 수 있다.
용인 시내를 빠져나와 10km가량 남동쪽을 향한다. 작은 마을을 지나자 어느새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법한 산길을 지난다. 산골짜기라는 느낌이 물씬나는 길목에 들어서자 ‘한덕골 사적지’가 200m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보였다.
많은 교우촌이 그렇듯 한덕골도 박해시대 신자들이 숨어 살던 마을이었다. 한덕골은 원래 산골짜기의 교우촌만을 부르던 말이 아니다. 아랫마을 한덕골과 산자락에 자리한 광파리골을 합쳐서 한덕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솔뫼에 살던 김대건 성인과 그 가족이 박해를 피해 처음 이주해 온 곳이 바로 이 한덕골이다. 김대건 성인의 조부인 김택현은 1827년 정해박해 때 난리를 피해 서울 청파동으로 갔다가 다시 이곳에 왔다. 박해를 피해 한덕골까지 찾아오기는 했지만, 급히 박해를 피해오느라 머물 집조차 없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인의 가족은 마을 근처 골짜기에 들어가 나무에 칡을 얽고 그 위에 억새를 덮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대건 성인 일가의 족보에 따르면 성인의 조부 김택현과 숙부 김제철의 묘가 한덕동에 있다고 기록돼있다.
한덕골에 도착하니 이곳이 한덕골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성상들이 보였다. 제법 너른 잔디밭이 가꿔져있고 야외제대가 있어 미사를 봉헌하는데도 어려움이 없어보였다. 성상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김대건 성인의 석상이다. 성인은 그의 아버지 김제준 성인과 한덕골에서 얼마간 살다가 거처를 골배마실로 옮겼다. 성인의 삶 중에서 긴 시간을 차지한 것은 아니지만, 한덕골과 성인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바로 사제품을 받고 신자들을 사목하던 곳이 이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한덕골이 위치한 용인·안성 지역은 박해초기부터 많은 교우촌이 형성됐다. 미리내를 비롯해 골배마실, 굴암, 검은정이와 같은 초기 교우촌들이 모두 이 지역에 자리했다.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고 돌아온 김대건 성인은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를 오가며 신자들을 사목했다. 바로 한덕골이 은이성지와 미리내성지 사이에 있는 교우촌이다. 물론 김대건 신부가 한덕골에서 성사를 집전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은 아니다. 다만 한덕골의 위치를 생각할 때 한덕골의 신자들도 성인과 함께 미사를 드리며 기도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김대건 성인의 석상 옆에는 또 한 명의 사제의 석상이 서 있었다. 바로 김대건 성인과 함께 신학생으로 발탁돼 성인 다음으로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의 석상이다. 한덕골에는 최양업 신부의 발자취도 남아있다.
한덕골 교우촌에는 최양업 신부의 둘째 큰아버지인 최영겸(베드로) 일가가 1837년부터 정착해 살고 있었다. 기해박해 때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 최경환 성인과 이성례 복녀가 순교하자, 최양업의 막내 최신정은 한덕골에서 성장했다. 사제품을 받고 귀국한 최양업 신부는 이곳에서 가족과 눈물로 상봉하고, 이후에도 이곳에 들러 성사를 주곤 했다.
이후에도 깊은 신앙을 이어오던 한덕골 교우촌에서는 1866년 42세의 나이로 순교한 김 마리아와 1970년 40세로 순교한 김 시몬 등 하느님을 믿다가 세상을 떠난 순교자가 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떠나 잊혀가던 한덕골을 발굴한 것은 고(故) 김진용(마티아·인천교구)씨다. 김씨는 교회사 연구에 각별한 열정을 지니고 한덕골에 얽힌 역사를 찾아냈다. 지금의 사적지 부지도 직접 매입해 교구에 기증한 땅이다.
현재 한덕골 사적지는 용인대리구 천리요셉본당(주임 장찬헌 신부)이 관리하고 있다. 본당은 사적지에 대형십자가와 김대건·최양업 신부 석상, 제대를 설치했다. 2010년 5월에는 파티마의 성모상을 세우고 축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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