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기억하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사실,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다소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이 호칭 때문에 교회는 오랜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인간을 두고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이 호칭은 성모님께서 낳으신 예수님이 하느님이라는 의미이지, 성모님이 하느님을 낳은 신적 존재라는 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50대 50으로 지니신 분이 아니라, 온전한 인성을 지니고 계시면서 동시에 온전한 신성을 지닌 분이시기 때문에 성모님이 예수님의 어머니라면, 하느님의 어머니라고도 불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간 예수를 낳은 어머니라고 말해 버린다면, 예수님을 신성과 인성을 50대 50으로 지닌 분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431년 에페소 공의회는 성모님을 천주의 거룩한 어머니라고 공식적으로 부르기로 결정합니다.
성모님께서 이처럼 하느님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유는 성모님 당신 자신이 위대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베푸시기 위해 당신 아들의 모친으로 간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도 모두 성모님께 집중되어 있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성모님이 하신 것은 다만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의탁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을 뿐입니다.
성모님이 보이셨던 이런 자기 낮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행동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성모님의 그 “비천함”을 굽어보시어(루카 1,48), 그분에게서 구원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신비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세상의 비천한 모습이 하느님 앞에서는 가장 위대한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성모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런 역설적인 모습을 우리는 아기 예수님에게서도 봅니다. 말구유에 누워계신 아이의 모습을 하신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이처럼 비천한 모습을 하고 비천한 이들을 위해 오셨음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1-53)
성모님이 보게 된 하느님의 자비, 곧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치게 하실 자비는 바로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비천한 이들을 굽어보시는 자비입니다. 그런 자비는 없어지고 말 자비가 아니라 영원히 지속될 자비입니다. 어찌 보면 성모님을 두고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처럼 자신의 비천한 처지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며 그분을 경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찾아왔을 때,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19-21)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어머니, 하느님의 형제요 자매가 되는 조건이 분명해집니다. 바로, 육신으로 그분의 어머니, 형제, 자매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라면 누구나 하느님의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낳으신 성모님처럼, 이웃을 향해 그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하는 이들, 그들이 바로 오늘날의 하느님의 어머니들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오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모두 천주의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불릴 수 있도록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겠다고 다짐합시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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