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임금으로 공적으로 드러나셨음을 기념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에서 들은 것처럼 동박 박사 세 사람이 먼 곳에서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하였음을 기념하는데, 전승에 따르면 그들의 이름은 멜키올, 발타살, 가스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와 관련해서 유명한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기원후 1604년 목성, 토성, 화성 사이에 매우 특별한 배열이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배열은 805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특이 현상으로 기원후 799년과 기원전 6년에도 일어났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이 기원전 6년에 탄생한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마태오 복음에서 무수한 아이를 죽였던 헤로데가 기원전 4년에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탄생을 중심으로 기원전과 후를 나누는 오늘날 연대 계산법은 중세 시대 이후에나 시작된 계산법으로 이를 처음 계산할 때 다소간의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케플러에 따르면 동방박사들이 본 별은 목성, 토성, 화성의 특이한 배열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세 행성은 점성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목성은 임금을 상징하고, 화성은 전사를 상징하며, 토성은 스승, 지도자를 상징합니다. 이 세 행성이 12궁도 가운데 물고기자리에 나타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고기자리는 고대 근동에서 이스라엘 땅을 상징했습니다. 또한 이 자리는 땅의 마지막 날이라는 개념과도 직결되어 있는데, 동방박사들은 이를 보면서 서방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 안에서 우리 땅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을 때 전사인 한 임금, 권위를 지닌 스승이 태어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임금과 친분을 맺기 위해 세 가지 선물을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 이야기는 실제 있었을 법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는 우리에게 실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던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밝히는 것이 목적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밝히기 위해 꼭 필요한 이야기들만 우리들에게 전달해 주고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동방박사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이 세상 만방에 드러나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동방박사 세 사람은 온 세상 모든 나라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가져온 선물 역시 상징적인 의미들을 지니는 것들입니다.
먼저, 황금은 임금에게 드리는 선물로써 예수님만이 세상의 유일한 왕이심을 나타내는 것이고, 유향은 제사 때 드리는 향으로써 예수님만이 참으로 높으신 사제라는 것을 드러내고, 몰약은 시체가 썩지 않도록 바르는 약인데 바로 우리를 영원히 죽지 않도록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 이야기는 결국 예수님만이 참된 임금이요 구세주이심이 세상 만방에 드러나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는 이유입니다.
자연 현상을 보면서도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았던,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되었음을 알아보았던 동방박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반성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찾아 나서지 않는 우리들의 나약함을 보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만이 세상의 참된 주인이요 임금이심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분의 뜻에 따라 세상이 다스려질 수 있도록,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노력합시다. 그때 비로소 오늘도 예수님이 참된 임금이심이 세상 만방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면서, 다시금 되새겨야 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 신년호 특집 발행으로 이번호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일) 주님 공현 대축일(3일) 복음 내용을 함께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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