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럭 하고 화를 내는 대신 딱 한번 만, 딱 1분만 참아보세요.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 1분 동안의 인내를 통해 원망과 미움이 이해와 배려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의 세상 아닐까요?”
2015년 12월 불가에서는 동지(12월 22일)와 보름(12월 25일)이 같이 몰려 가장 분주했던 연말을 지냈다. 그럼에도 12월 23일, 서울 돈암동 흥천사에서 회주(절의 창건주나 큰 어른) 정념 스님을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스님은 대구의 한 암자에서 동안거 중이었지만, 마침 이날 동안거를 하루 쉬고 서울에 올라왔던 터였다.
무간도에 빠진 한국 사회
정념 스님은 현재 한국 사회가 지독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무간도(無間道) 지옥과 비교했다.
무간도는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 가운데 맨 밑에 위치한 지옥으로, 직역하면 ‘틈이 없는 길’ 즉, ‘빠져 나갈 곳이 없는 길’이란 뜻이다.
스님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빈부 격차, 진보와 보수 등 이념과 입장에 따른 사회 양극화, 악화되고 있는 계층 간의 유리, 중산층의 붕괴,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 등 사회 문제로 한국 사회가 홍역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살자고 하는 일인데 누구는 죽자고 덤벼드는 것 같다”며 “같이 공존해야 하는 사회에서 다들 혼자만 잘 살려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천국에 가든 지옥에 가든 현실에서 집착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한다”면서 하지만 “내 것은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겨 둔 것은 아닌지 나부터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테러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일어나는 살육의 참상들은 근본적으로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를 묻게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인과는 옛날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이 시대 눈을 뜨면 살육의 정보가 넘치고 있어요. 서로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세상 소식에 문을 닫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1분만, 딱 1분만 참아보자
우리 사회가 불행하고 각박해지는 근본적인 이유로 정념 스님은 서로가 화를 참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지나친 욕심을 꼽았다.
“나의 이득을 위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이웃을 위한 배려와 봉사 등 좋은 일을 향한 욕심은 키우고, 나만을 위하는 이기심은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길이 바로 자비를 향하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가톨릭교회의 ‘자비의 특별희년’ 선포는 무문관(無門關)의 화두처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면서 “이제 이 세상에서 자비의 마음을 주고받지 않으면 우리 모두 슬퍼질 것 같다”고 전했다. 무문관은 ‘문이 없는 관문’이란 말로 선승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용맹정진하는 수행의 상징이다.
또한 정념스님은 “목자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걱정한다”면서 “이처럼 우리가 약자에 대한 자비와 연민을 갖는 것은 어떨까”라고 반문한다. “상대의 고민이 나의 고민이 되고 상대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될 수 있는 대화와 성찰이 이 시대의 가장 큰 화두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조언이다.
이런 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자들 사이에서도 큰 모범이 되고 있다고도 전했다.
“교황님의 방문에 불자로써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당신이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었던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의 마음도 위로 받았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의 기도를 보내면서 슬픔이 사라지길 기도했습니다.”
정념 스님은 불교의 자비는 고통을 해결해서 즐거움을 주는 것, 즉 발고여락(拔苦與樂)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상황이 다 다르듯 각자의 고민과 고통은 다르다.
불교에서는 8만4000의 고민, 8만4000의 보살이 있다고 한다. 그는 “가톨릭의 자비는 잘 모르지만 불교의 자비와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네가 기뻐할 때 나도 기쁘고 네가 슬퍼할 때 나도 슬픈 것이 불교의 자비입니다”라고 말했다.
상호 존중과 소통이 해결책
불가에서 중생의 번민을 해결해 자비로 이끄는 첫 방법은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각자 다른 괴로움, 즉 돈, 직장, 가정불화, 자식문제 등 다양한 고민을 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바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번민을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스님은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듯이 자기 고민을 말하다보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면서 “스스로의 고민을 되짚으면서 잘못을 반성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념 스님은 우리 바로 옆에 있는 가족과 이웃 사랑에 대해 강조했다.
“우리는 목불이나 탑 이런데서 3000배를 합니다. 돌, 나무에게도 3000배를 하는데, 정작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절 한번 하지 않아요. 옆에 있는 남편과 부인에게 한번만 절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데, 이것을 못하면서 저 멀리 설악산 계곡 봉정암까지 올라 가서 절을 3000번씩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이어 스님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새벽같이 교회에 나가 미사나 기도를 드리는 데 열심이지만, 정작 주위의 하느님을 보지 못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실제 하느님은 나무 십자가 위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지적이다.
“가까이 있는 우리 가족, 이웃이 바로 깨달은 자라고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한 번만 더 생각하고, 한 번만 더 배려하고 1분만 참으면 불행을 50%는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자비는 세계 공용어
한편 정념 스님은 사랑과 자비를 펼치는 데 있어 각 종교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훌륭한 타종교 성직자들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고, 특히 가톨릭 성직자의 인품과 겸손이 본보기가 되어 지금까지 자신을 채찍질하는 거울이 되고 있다고 했다.
스님은 “또 주변의 대사회 활동에 헌신적인 기독교 목사들의 목회활동은 불교에 취약한 부분을 일깨워 주고 있다”면서 “이웃에 대한 나눔이 사랑이 되고 섬김이 되는 것을 알기에 항상 주변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비는 세계 공용어입니다. 교황의 가르침처럼 종교를 벗어나 자비를 나눌 때입니다. 자비의 특별희년, 새해 특별히 문을 열어 놓은 성문(聖門)의 은총이 성도님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축원드립니다. 그 축복으로 대한민국이 좀 더 따뜻한 나라가 되기를 또한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정념 스님은…
1962년 생으로 1982년과 1987년 각각 사미계와 구족계를 수지했다. 이후 봉정암 주지, 낙산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재무부장, 선암사 주지, 흥천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현재 흥천사 회주로서 총무원장 종책특보단장, 무산복지재단 이사장, 조계종 종회의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또 문화재 전문위원, 서울시 전통사찰보존위원회 위원장, 국립공원관리공단 비상임이사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 주지로 임명된 지 불과 보름만인 2005년 4월 5일, 정념 스님은 지역에 발생한 산불로 사찰의 주요 건물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정념 스님은 사찰 복원 작업을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도 낙산사 입장료 폐지, 방문객에 무료 국수 공양 등으로 상실감에 빠진 국민을 위로했다. 손을 벌리기 보다는 베푸는 방식으로 발상을 전환해 정념은 국민들의 복원 불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었으며 성공적으로 낙산사를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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