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는 ‘자비’를 화두로 2016년 새해의 발걸음을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쟁과 재난 등으로 점철된 오늘날 세계 상황 속에서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라고 강조해왔다. ‘자비’는 종교와 국가 등을 초월해 전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가톨릭신문은 ‘자비의 희년’으로 지내는 새해를 맞아, 가톨릭과 불교,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자비’에 관한 가르침을 듣고, 모든 종교인들이 함께 자비의 필요성과 실천 내용 등을 환기하는 특별인터뷰를 마련했다.
인터뷰에서는 염수정 추기경(가톨릭)과 정념 스님(불교), 이주화 이맘(이슬람)이 각 종교가 설파하는 자비와 사랑에 관한 메시지들을 설명하고, 희년을 맞아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하길 독려했다. <주정아 기자>
자비라는 것은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장)은 신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면서 ‘자비의 희년’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12월 8일 로마 베드로 대성당 성문 개문을 시작으로 하느님 자비를 실천하는 자비의 희년이 올 한해 화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희년을 맞아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체험한 신자들이 기쁘고 활기차게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염 추기경은 우선 현대사회가 당면한 현실부터 짚었다.
“무자비한 테러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많은 이들은 전쟁과 폭정을 피해 세상을 떠돌며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생명 경시와 환경 파괴, 물질만능주의와 특히 집단 이기주의 등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욱 병들게 하고 있지요.”
염 추기경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 속에서 찾았다. ‘불평등의 원인은 한계를 모르는 권력욕과 소유욕이며 그 태도 뒤에는 윤리와 하느님에 대한 거부가 있다’는 것이다.
“남을 향하던 화살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이르고 주님의 선물인 생명까지 그르치고 마는 모습을 목격하면 너무나 참담합니다. 이는 세계 곳곳의 모습일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염 추기경은 교황의 희년 선포칙서 「자비의 얼굴」 내용처럼 “하느님의 고유한 본질은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고, 자비 안에서 하느님의 전능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하느님은 심판하고 벌하기에 앞서 연민과 자비로 우리를 끝까지 용서해주시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기쁘게 자비를 선포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교황님께서는 낮은 자세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찾아다니며 자비를 실천하고 계십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 가톨릭 신자들도 이처럼 주님의 자비의 행보를 이어가야 합니다.”
자비가 요청되는 한국사회 현실
자비가 요청되는 현실은 한국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염 추기경은 분단 70년이 넘도록 여전히 남북으로 대립하고, 이제는 남남갈등마저 더욱 심해지고 있는 한국사회에 ‘자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재단해 판단하고, 험담하고, 공격합니다. 사회적 불신과 박탈감은 팽배해지고 사람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염 추기경은 하느님 자비의 정신과 실천이 필요한 곳은 ‘바로 우리 자신이며, 우리 주변’이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의 신비를 각자 삶의 자리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자비의 실천을 위한 개인적 차원의 준비로는 ‘고해성사’를 꼽았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하느님과 화해하며, 무엇보다 먼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깨달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고해성사는 하느님과 화해하는 아주 중요한 소통 통로가 됩니다. 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베푸시는 자비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희년의 궁극적 목적이기에 선교와 자선활동 등 다양한 실천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는 자비로운 교회가 되기 위해 ‘시대의 징표’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라는 자비의 희년 모토를 이해하고,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자비의 본보기를 따르자고 당부했다.
교회의 성찰과 반성, 변화
화해와 일치가 필요한 한국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도 절감했다.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종교인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이때, 우리 사회의 산적한 문제가 드러나기까지 교회도 사회 한가운데서 이들과 함께해왔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걱정은 우리 신앙인들이 믿음의 근간이 흔들린 채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고 서로 갈라지는 모습입니다. 또한 젊은 신앙인들의 신앙적 어려움을 확인하며 무거운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염 추기경은 병인박해 150주년이 되는 올해 많은 우리 신앙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것을 기억하고, 온전히 하느님과 이웃사랑을 위해 사는 법을 배운다면 ‘희망’은 있다고 말했다. 신앙선조들처럼 솔선수범해 서로 일치하며 사랑과 친교를 나누길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사야 예언자가 노래한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며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가는’(이사 11,6 참조) 그런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노력을 통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불행이 행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의 추구는 한 민족이나 정치 공동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에 영향을 주는 기후나 식량, 환경 등 공동선을 위해 고민하고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자비의 희년 개막일인 2015년 12월 8일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이 되는 의미심장한 날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교회가 누군가를 단죄하는 곳이 아니라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고 기쁨과 희망을 전하는 교회로 발돋움하도록 한 공의회는 가톨릭교회의 혁신이었다. 공의회 폐막 50주년을 기념하며 맞은 자비의 희년 또한 회심을 통한 변화로써 하느님 자비 앞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한다.
“주님의 자비만이 우리를 온전히 변화시킵니다. 우선 교회가 신앙인들에게 하느님 자비를 드러내는 얼굴을 보여주어야 하고, 이를 통해 신앙인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비에 대한 실천
“올해 우리는 병인년 순교자들만이 아니라 남북 분단으로 순교의 길을 걸으신 신앙인들도 기억해야 합니다. 순교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우리 민족이 하나가 돼 자유롭게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병인박해 150주년을 맞아 서울대교구는 병인박해 관련성지인 절두산순교성지기념성당, 새남터순교성지기념성당, 중림동약현성당에 ‘자비의 문’을 설치하고 2월 23일 이 문들을 열 계획이다. 자비의 희년 기간에는 이곳 순교성지와 명동대성당,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의 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대사가 주어진다.
교회의 미래인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애정과 관심도 잊지 않았다. 얼마 전 자비의 희년을 맞아 가장 먼저 젊은이들을 위한 고해성사를 명동대성당 마당에서 펼친 것과 같이 젊은이들에게 희년의 의미와 기쁨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나갈 예정이다. 또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과 함께하고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실천도 교구 각 사목분야에서 펼쳐나갈 생각이다.
“신자 개개인이 하느님의 자비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각 분야에서 부지런히 활동할 계획입니다. 희년 동안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얼굴’이 돼 신자들과 교회 공동체가 새롭게 거듭나길 기대합니다.”
-염수정 추기경은…
추기경(Cardinals)이란 여러 가지 직무를 통해 교황을 보필하는 최고 측근자이자 가톨릭교회의 최고위 성직자다. 교황의 임명을 통해 서임되는 추기경은 교황 선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은 1970년 12월 8일 사제로 수품, 서울대교구의 여러 본당 주임과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사무처장, 교구 사무처장 등을 지냈다. 2002년 주교로 수품된 염 추기경은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사목하다 2012년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 2014년 추기경에 서임됐다.
2005년 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생명 수호와 생명문화 건설을 위해 힘써왔으며, 서울대교구장과 더불어 평양교구장 서리를 맡아 북녘교회에 대한 관심과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1969년 김수환 추기경, 2006년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세 번째로 서임된 추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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