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이 존재하지 않음이다. 빛이 어둠을 비추더라도 어둠은 빛을 알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무지와 무능함이다. 그래서 ‘빛이 이 세상에 왔더라도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함’(요한 3,19)으로 스스로를 심판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어둠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은 진실이라는 빛보다 거짓말이라는 어둠에 숨기를 더 좋아했다. 그렇게 현대의 끔찍한 전쟁과 충격적인 사건과 참사에는 늘 거짓말이 있었다.
몇 해 전 한 공중파 방송에서 전 경찰청장 청문회를 생중계해 준 적이 있었다. 국회의원들은 질문하기에 앞서 진실 증언 선서를 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증인은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항이기에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다며 선서를 거부했다. 그러자 질문을 준비한 국회의원은 어떻게 국민 앞에서 증인 선서를 거부할 수 있냐고 분노했고, 그 반대편에서는 선서를 강요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증인을 두둔했다.
증인이 진실을 말할 것을 선서하지 않음은 상황에 따라 거짓을 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분명했다. 거짓을 말하는 것도 정당한 인간의 권리가 될 수 있을까? 그나마 진행되던 청문회는 잠시 뒤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방송을 중단했다.
덕분에 나는 머리털이 자라고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방송국에 항의 전화를 했다. 참담함을 넘어서는 분노가 느껴졌다. 정책을 결정하고 법을 집행하는 고위 공무원의 거짓말을 너그러이 용인하는 사회가 도덕적으로 건강한 사회일까? 거짓말을 피하기 위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뻔뻔함을 마치 당연한 처세처럼 마주하는 우리 시대의 ‘도덕적 불감증’에 깊은 회의와 아픔이 스며왔다.
인간은 어디에서 거짓말을 배웠으며 왜 거짓을 말할까? 이솝우화의 거짓말쟁이 양치기는 정말 ‘재미’ 때문에 거짓을 말했을까? 아니면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잊는 ‘상실’이 두려워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했을까?
한 번의 거짓말로 한사람의 인생이나 사회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는데도 인간은 시기심과 두려움과 탐욕으로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다. 세상의 거짓말쟁이들이 파괴하는 것은 인류가 힘겹게 쌓아올린 신뢰와 사랑과 순수한 아름다움의 가치 말고도, 진리라는 빛을 손쉽게 파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은 빛을 향한 폭력인 것이다.
사제들은 예언자적 사명으로 세상의 어둠인 거짓 예언자들의 거짓말과 싸운다. 공적인 사명과 책무를 지녔음에도 진실을 거부하고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이들이 거짓 예언자들이다.
‘거짓 예언자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마태오 7,15)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들은 무질서를 열매 맺으며 착한 이들을 물어뜯는다.
예수님은 ‘늑대가 나타났다‘며 요란 떠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셨으며, 양들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거짓 예언자들’이라는 이리떼를 보고 침묵으로 도망가지도 않으신 채 그들과 맞서서 목숨 걸고 싸우셨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어둠과 맞선 진정한 진리의 빛이시며 양들을 위한 ‘착한 목자’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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