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국악미사곡 하나’를 작곡한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87년 제가 수련을 받던 중에 작곡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이 미사곡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작곡의 계기가 된 ‘자비송’에 관한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군대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지금은 국방부 군악대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육군본부 군악대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옆에 있었어요. 이 부대는 음악을 전공한 음대생들만 오디션을 통해 뽑는 최고의 군악대인데 양악대와 국악대가 있었어요. 군에 입대하기 전 저도 오디션을 보고 이 부대로 배치를 받았지요. 군대생활이 다 그렇듯 졸병생활은 고달프기 마련이지만, 특히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성당에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거였어요.
당시 ‘종교행사의 날’에는 성당이나 교회나 법당을 갈 수 있도록 제도화돼있었는데, 졸병은 부대에 일이 많을 경우 사역을 해야 해서 성당에 갈 수 없는 때가 많았거든요. ‘사역’이란 부대의 허드렛일을 하는 것을 말한답니다.
부대에 배치받고 한두 달 됐을까요? 사순시기 주일이었는데 고참들은 성당에 가고 저 혼자 남아 식당 청소를 해야 했어요. 널찍한 식당을 걸레질하면서 너무 처량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 내가 크면 국악성가를 만든다고 했었지? 지금 해보자. 성가 중에 가장 중요한 성가가 뭐지? 미사곡이네. 그럼 미사곡 중에 제일 먼저 나오는 곡은? 자비송이지.”
당시는 자비송이란 용어를 쓰지 않고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명칭을 썼었지요. 가뜩이나 처량한 상황에서 그것도 사순시기 주일에 성당에 못 가는 설움에 북받쳐 노래가 나왔습니다. “주여~우리를~불쌍히 여기이소서~”
눈물을 글썽이며 혼자 목이 터져라 노래 불렀지요. 정말 이 기도문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처지에 꼭 맞는 기도문이었지요. 실컷 부르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이렇게 성당에 못 가는 설움과 졸병생활의 고달픔에 젖어 주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며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며 불렀던 노래가 바로 ‘국악미사곡 하나’의 ‘자비송’이었습니다.
내친김에 미사곡을 계속 써보려고 애 써봤지요. 그런데 진도가 나가질 않는 거예요. 대영광송은 어떻게 곡을 붙여야 할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당시 저는 신학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전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지요. 성가는 음악지식만 갖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신심과 전례지식이 겸비돼야 쓸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쉽지만 자비송만 완성한 채 묻어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미 계획을 하고 계셨어요. 제가 제대 후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게 된 것이지요. 지원기, 청원기를 거쳐 수련을 받던 중 소풍을 가게 됐어요. 순댓국집에 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문득 미사곡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군대시절에 국악으로 자비송을 만든 게 있는데 들어보겠느냐’고 했더니 한번 불러보라는 거예요. 감정을 잡고 멋들어지게 불렀죠. 당시 수련장 신부님이 미국에서 오신 손어진 신부님이셨는데 너무 좋아하시면서 우리 성주간 전례 때 쓰자고 하시는 것이었어요. 저희 예수 고난회에서는 성삼일 파스카 전례를 모든 형제들이 모여서 거행하거든요. 목요일 저녁 만찬미사에서 이 ‘자비송’을 부르게 됐죠. 모두들 좋아하셨어요. 특히 미국에서 오신 박도세 신부님이 이 노래를 들으시고 부활대축일에 부를 알렐루야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그날 저녁에 ‘알렐루야’를 만들었지요.
다음날 신부님께 “장구를 곁들이면 더 흥이 난다”고 말씀드리자 당장 종로에 나가 장구를 사주시는 거예요. 덕분에 부활대축일 미사 때 장구를 치며 알렐루야를 신나게 불렀지요. 이후 손 신부님께서 미사곡을 한 번 완성해 보라고 권하셨어요.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바로 ‘국악미사곡 하나’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제 군대시절 ‘자비송’을 최초의 국악미사곡으로 탄생시키는 밑거름으로 활용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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