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안양대리구의 중심, 중앙본당(주임 조영오 신부)은 60여 년의 역사 속에서 내적·외적 복음화에 헌신하면서 안양지역에 복음의 빛을 비추려 노력해온 본당이다.
안양지역 신앙의 역사는 박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는 “늦어도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에는 안양에서 서쪽으로 10리 거리인 수리산 깊은 산 속에 박해시대의 전형적인 교우촌이 형성돼 60여 명의 신자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최경환 성인과 그 일가가 생활하던 수리산 교우촌이 그곳이다. 성인의 아내 복녀 이성례와 그 아들로서 후에 사제품을 받은 최양업도 이곳에 숨어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교우촌은 담배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갔기에 담배촌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박해가 끝나자 안양·시흥 지역 곳곳에 공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본당의 모태가 되는 안양공소는 하우현본당 관할 공소로 역시 박해 이후 생긴 공소였다. 본당을 설립한 1954년 경 신자는 약 30세대로 공소를 포함해도 신자 수 1000명이 넘지 않았다.
본당의 적극적인 전교로 신자수가 날로 증가함에 따라, 임시로 마련한 목조성당을 대신할 새 성전이 절실해졌다. 본당은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성전건축기금을 모으고 노기남 주교의 도움을 받아 1959년 새 성당을 축복했다. 성당에는 3개의 종이 설치됐는데, 수리산공소는 물론이고 10㎞ 가량 떨어진 하우현의 신자들도 이 소리를 듣고 삼종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이때 성모성심을 본당 주보로 선포했다.
본당은 다양한 사목을 펼쳐 안양지역에 복음을 전해왔다. 1956년에 개원한 본당 부설 안양유치원은 안양 최초의 유치원으로 안양지역 유아교육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유치원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하느님 사랑에 근거한 유아교육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순교자 현양에도 앞장섰다. 본당은 1963년 수리산에 순교기념비를 설립하고, 해마다 예수승천대축일에 최경환 성인 묘역에서 야외미사를 봉헌했다. 이후 수리산성지 전담사제가 파견된 2000년까지 본당은 성지를 가꾸며 순교자 현양에 앞장서왔다.
1971년에는 성당 앞에 근로자회관을 설치하고 객지에서 저임금으로 생활하는 가난한 근로자를 돌봤다. 근로자회관은 현재 교구 사회복지회관으로서 여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활동에 이용되고 있다.
안양에서 장내동으로, 장내동에서 중앙으로 본당명이 바뀌었지만 전교에 대한 열정은 한결같았다. 본당 신자 수는 날로 증가해 1975년 호계동본당을 분당시키기 시작해 8개 본당을 분당시켜왔다. 현재도 본당 신자 수는 약 9000명에 이른다. 2004년 봉헌된 현 성전은 콘크리트 노출 방식 중에서도 가장 규모 있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2003년 안양시에서 건축문화상을 받는 등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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