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참 오묘합니다. 1987년 수련자 시절, 손어진 수련장 신부님의 은경축 미사 때 선물로 드릴 요량으로 작곡한 미사곡이 실제로 미사 안에서 처음 불린 것은 전국 남자 수도회 수련자대회 파견미사 때였습니다.
한국에 진출한 남자 수도회들은 여름에 3박4일 수련자대회를 개최해 친목을 도모합니다. 그해 8월 경기도 용인 성모영보수녀회 피정집에서 대회가 열렸지요. 혹시나 싶어 완성된 미사곡을 갖고 주최하는 수사님에게 “국악식으로 미사곡을 작곡한 게 있는데 원하시면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주최 측에서 선뜻 프로그램 하나를 비우고 성가 연습시간을 넣어주었어요. 모두들 신기해하면서 재미나게 배웠지요.
우리 수련자 대회의 마지막 프로그램이 산 하나를 넘어 미리내성지를 순례하고 성 김대건 신부님 묘소 앞에서 파견미사를 드리는 것이었어요. 주최 측에서 이 파견미사 때 우리가 연습한 미사곡을 부르기로 한 거예요. 전국 수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거룩한 수련장 신부님들이 공동 집전하시는 가운데 성 김대건 신부님 묘소 앞에서 최초로 ‘국악미사곡’이 불리게 된 것이지요. 그때는 저도 그 의미를 잘 몰랐어요.
나중에 보니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섭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최초 국악미사곡이 불려야 할 자리는 마땅히 한국 최초 성인 신부님인 김대건 신부님 묘소 앞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자연스런 과정을 통해 이뤄졌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이었던 거지요.
10월, 손 신부님의 은경축 미사에서 다시 한 번 이 미사곡이 봉헌됐지요. 그런데 이 두 미사에 참여했던 분들이 악보와 음원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셨어요. 당시 수련자였던 저는 방법을 찾을 수 없어 시큼털털한 수도원 녹음기를 갖고 성당에 앉아 테이프에 녹음해서 여기저기 보내줬지요.
이듬해 유기서원을 하고 광주 신학교에 복학하면서 신학교 축제 때 이 국악미사곡을 신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됐어요. 그러자 이 미사곡이 점점 더 알려지기 시작했고 음원에 대한 요청이 많아졌습니다. 당시 준관구장이자 제 지도자였던 박도세 신부님께 조심스럽게 사정을 말씀드렸지요. 신부님은 선뜻 녹음해보자고 하시며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해주셨어요.
처음에는 국악하는 동창들을 돈암동 수도원에 불러놓고 카세트 녹음기로 녹음을 시도했는데 당연히 녹음의 질이나 상태가 좋지 않았지요. 기왕 만드는 거 제대로 된 스튜디오에 가서 정식으로 녹음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신부님은 저를 데리고 성바오로딸수녀회를 방문해 정식 음반제작을 협의하셨어요. 수녀회 측에서는 환영하시며 비용과 필요한 사항들을 제공하겠다고 하셨어요.
국악기 편곡과 악단 및 스튜디오 섭외, 성가대 연습 장소 제공 등을 수녀회에서 책임지기로 하고, 성가대는 예수 고난회 수사님들과 성바오로딸 수녀님들이 맡기로 하면서 음반 제작이 급물살을 탔지요. 여름방학을 맞아 한 달 동안 맹연습을 했습니다. 유기서원자 1년 차였던 전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을 가르치느라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합창과는 별도로 악기 지휘와 편곡은 KBS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이셨던 이상규 선생님이 맡아주셨어요. 연주는 관현악단 수석급 연주자들이 해주셨고요. 당시 국악계 최정상급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음반에 동참해주신 것이지요. 녹음은 당시 가장 규모가 컸던 한강 스튜디오에서 이뤄졌습니다.
밤 12시를 넘기는 강행군으로 녹초가 됐으면서도 처음 해보는 스튜디오 녹음이라 수사님, 수녀님들은 신기해하고 행복해하셨답니다. 어려웠던 시간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사흘에 걸쳐 즐겁게 녹음을 마쳤지요. 정식 음반을 내면서 이름을 결정하는 문제가 남았어요. 전 ‘우리미사곡’이란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데 수녀님들이 ‘국악미사’라고 붙이는 것이 더 좋다고 주장하셔서 그렇게 됐지요. 그때부터 ‘국악성가’라는 용어가 생겨나게 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초 국악성가 음반인 국악미사가 1988년 9월 20일, 한국순교성인들의 대축일을 기해 악보와 함께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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