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성남대리구 광주본당(주임 김화태 신부)은 한국교회의 발상지 광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신앙을 이어온 공동체다.
경기도 광주 천진암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자들이 모여 교리를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신앙을 실천하던 곳이다. 이벽·이승훈·정약종·권일신·권철신 등의 신앙선조들은 이곳에서 천주교 강학회를 열고, 교리 공부와 실천에 힘썼다.
광주지역 신앙의 역사는 박해시기에도 이어진다. 광주 남한산성에서는 신유·기해·병인박해를 거치면서, 한강 이남 경기지역에서 잡혀온 신자 300여 명이 순교했다.
모진 박해를 받았지만 신앙의 씨앗은 광주 지역 산골마다 뿌리 내려 여러 공소들이 형성됐다. 도척면에는 박해시대부터 이어오는 교우촌이 다수 자리하고 있었고, 1890년을 전후해 초월면, 실촌면, 오포면 등에 왕림본당 관할 공소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본당이 위치한 광주읍내에 공소가 생긴 것은 1936년의 일이다.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 속으로 숨어든 만큼 광주의 중심지였던 광주 경안은 신자들이 머물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본당의 모태가 된 광주읍 경안공소는 구산과 서울 등지를 비롯한 인근 공소에서 신자들이 모이면서 공소로 발전할 수 있었다.
본당 설립 당시엔 경안공소를 본당으로 설립할 계획이 없었지만, 공소회장과 신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1958년 경안본당이 설립됐다. 공소는 신자가 봉헌한 한옥을 터서 만든 건물이었다. 게다가 인근에는 시장이 형성돼 성당 터로 적절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본당 신자들은 1964년 현재 성당 터를 매입하고 꾸준한 봉헌과 노력봉사 끝에 7년 만에 신축성당에서 첫 미사를 드렸다.
1975년 광주본당으로 이름을 바꾼 본당은 광주 지역 교육활동에도 앞장서왔다. 본당은 1981년 본당 부설로 ‘성모유치원’을 개원한 이후 지금까지 어린이들을 그리스도 정신 안에서 교육하고 있다.
1971년에는 가난과 불우한 환경으로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들을 위해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사랑의 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본당의 열정적인 선교는 많은 신자들을 입교 시켰다. 성당을 신축하던 1970년대에 1600여 명에 불과했던 신자는 점차 증가해 곤지암·초월·광남동·오포본당 등을 분가시켰다. 현재도 광주본당은 신자 수 5000여 명 규모에, 청소년활성화본당으로 열정적인 전교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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