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봉사를 잘 하시는 자매님이 있는데, 그분의 부지런한 손길이 가는 곳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합니다. 언제나 궂은일도 마다않고 말없이 나서서 봉사를 하시는데, 정말이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분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있는 연구소에 일을 좀 도와주러 오셨는데, 혼자 쓱싹쓱싹 하시더니 어느새 일을 다 끝내고는 조용히 사라지셨습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나서 또 한 번은 그분께 부탁드릴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일이 다 끝날 즈음해서, 제가 먼저 나가서 복도에 서 있다가 그분을 붙잡았습니다.
“자매님, 또 어딜 몰래 가시려고요! 날도 추운데 따스한 차 한잔 하고 가셔요.”
깜짝 놀란 자매님은 할 수 없이 내게 붙잡혀 연구소 안에서 모과차를 한 잔씩 마셨습니다. 미안한 표정에 겸손한 웃음을 지으시는 자매님은 뜨거운 모과차를 ‘후- 후-’ 불면서 한 모금씩 드셨습니다.
“자매님, 제가 알기로는 여기저기 봉사를 많이 다니신다고 하던데 건강은 어떠셔요? 그리고 화장실 찌든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청소하시는데 봉사가 몸에 밴 것 같아요!”
그러자 자매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신부님. 실은 제가 심장이 안 좋아서 깜짝깜짝 잘 놀라요. 의사 선생님이 꾸준히 운동을 하라고 해요. 그래서 운동하는 마음으로 봉사 다녀요. 그리고 실은 제가 어릴 때부터 비위가 약해서 지저분한 것을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시간 지나면서, 제가 많이 사람이 되어가요. 이게 다 하느님 덕분이고, 우리 어머니 덕분이에요.”
순간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건강은 그렇다 치고, 비위가 약하신 분이 어쩜 그렇게 묵은 때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벗겨 내시다니! 그런데 그게 다 어머니 덕분이라….
“어머니 덕분이라! 자매님 어머니는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자매님은 뜨거운 모과차를 드셔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얼굴이 불그스레하게 변하더니, 긴 한숨을 쉬셨습니다.
“신부님, 우리 어머니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지금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아들만 많은 집에 막둥이 낳은 딸이라고 저를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지 몰라요. 저는 어머니 사랑 때문에 이날 이때까지 살아 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다 죽어 가는 저를 살려 주셨고요!”
“어이쿠,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군요. 그런데 어머니가 죽어가는 자매님을 살려 주셨다고요? 혹시 무슨 일 있으셨어요?”
자매님은 찻잔을 내려놓고, 손으로 당신 입을 댄 잔 부위를 버릇처럼 닦으시더니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실 지금은 맹장 수술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 어릴 때에는 대수술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때 맹장 부위가 너무 아파서 방에 쓰러진 적이 있어요. 사실 그날이 잊혀 지지가 않아요. 12월 23일, 눈이 너무나도 많이 왔던 그날 밤! 저녁부터 맹장 부위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밤이 되자 온몸에서 열이 나고 통증이 너무 심했어요. 그때 우리 집은 시골인데, 아버지가 급하게 택시를 불렀어요. 그런데 택시들이 우리 집 넘어오는 고개가 너무 높고 미끄러워 도저히 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자 어머니가 큰 오빠에게 경운기 시동을 걸게 하더니, 우리 집에서 제일 두꺼운 요와 이불을 경운기 뒷자리에 펴서 나를 눕히는 거예요. 그리고 근처에 사는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까지 불러오시더니, 그 길로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눈 오는 밤길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향해 경운기를 몰고 가셨어요.”(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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