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장 시절 가장 극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훈련 나갔던 헬기들이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공중을 날아 부대로 복귀한 것입니다. 2002년 5월, 대대는 경기도 여주의 남한강변으로 전술훈련을 나갔습니다. 대형 시누크(CH-47) 헬기를 보유하고 있던 대대는 야외 전개훈련 시 헬기 전개를 위해 충분한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남한강변의 넓은 하천부지는 훈련장으로 최적의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훈련 이튿날, 기상예보와는 달리 새벽부터 많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참모에게 일단 강물의 수위 변화를 잴 수 있는 말뚝 설치와 경계병 배치, 그리고 충주댐 관리소에 댐 수문개방 시 즉각 연락해 줄 것을 요청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걱정스런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정보작전과장이 헐레벌떡 뛰어와 “대대장님! 강물의 수위가 막 올라가고 있습니다. 충주댐 관리소에 전화하니 한 시간 전부터 수문을 개방했는데 우리에게 연락을 못했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상황의 긴박함을 직감하고 전 항공기에 대한 출동준비를 지시함과 동시에 기상을 확인했습니다. 기지 복귀는 고사하고 인접한 공군비행장으로도 비행할 수 없는 악기상이었습니다. 시시각각 강물의 수위는 올라오고, 기지복귀를 위한 기상은 제한되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가장 경험 많은 조종사에게 인근지역에 헬기를 이동시킬 장소를 정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정찰 결과는 절망적이었습니다.
이제 강물은 헬기 바퀴까지 올라오고, 헬기소음과 철수를 위해 장병들이 아우성치는 와중에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느님 도와주십시오. 이 난국을 헤쳐나갈 지혜를 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정찰기에서 “대대장님! 시정은 안 좋지만 저속으로 낮게 살살 복귀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날아왔습니다. 저는 지체 없이 “1중대 1번기부터 건제순으로 정찰 헬기를 따라간다. 지휘기는 맨 후미에 위치한다”라고 무전으로 명하고 헬기에 올랐습니다.
헬기들은 한 대 한 대 훈련장을 이륙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대로 향했습니다. 구름으로 인해 앞 헬기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비행하는 헬기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저희 항공기들을 안전하게 인도해 주소서.” 제가 탑승한 마지막 헬기가 무사히 기지 활주로에 착륙한 순간, 저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만약 그 당시 하늘길이 열리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저는 지금도 분명히 하느님께서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 길을 열어주셨다고 믿습니다. 신약성경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요한 16,23)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이후 저는 고난과 시련을 겪을 때마다 하느님을 믿고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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