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 사랑 넘치는 신앙인으로, 마음 넉넉한 큰 어른이자 지도자로 살았다. 한국인 열에 아홉은 늘 그를 존경했다. 열에 아홉은 여전히 그를 그리워한다. 그를 떠나보낸 지 7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지만, 김 추기경을 그리워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움에 사무치는 만큼, 그가 생전에 실천한 가치관을 배우고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들이 속속 고개를 들고 있다.
저자 인세 절반은 장학기금으로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7주기 기일을 맞아 그의 전기(傳記)가 발간돼 시선을 모은다. 김 추기경 생전의 모습과 숨결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역작이다.
「아, 김수환 추기경」(김영사/ 각 권 1만6500원)은 서울대교구에서 공인한 전기로, 2권 총1132쪽에 걸쳐 이어지는 대작이다.
이 전기는 「간송 전형필」 집필가로도 유명한 이충렬(실베스텔) 작가가 3년에 걸쳐 집필했다. 감수는 한국사학계와 교회사의 권위자인 조광(이냐시오) 고려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이 작가는 “사회계층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가치관도 혼란스러운 현실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김 추기경의 삶과 가치관은 우리 사회가 따라 가야할 길과도 같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또 전기의 인세 절반은 서울대교구 옹기장학회 장학기금으로 기부한다고 밝혔다. 옹기장학회는 김 추기경이 생전에 직접 설립한 유일한 교회 사업이다.
「아, 김수환 추기경」 제1권에서는 ‘신을 향하여’라는 부제 아래 1922~1979년의 삶을 풀어냈다. ‘인간을 향하여’를 부제로 한 2권에서는 1980~2009년의 삶을 이야기한다. 미공개 사진을 포함한 360여장의 자료사진이 또 하나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덕분에 그 어떤 자료보다 정확하게 김 추기경의 삶과 영성을 되짚어볼 수 있게 한다.
‘여러분과 또한 많은 이들을 위하여’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 추기경은 가장 높게 보이는 자리에 있었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물며 약자들의 편이 되어준 어른이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까지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충렬 작가는 말한다.
“많은 이들이 김 추기경님은 대체 어떤 이였기에, 굴곡의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굵직굵직한 업적들을 이룰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저는 전기 집필에 앞서 김 추기경님께서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믿음을 갖추게 된 과정을 알기 위해 먼저 노력했습니다.”
특히 작가는 김 추기경 삶에 단계에서마다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 후 해답을 찾아나갔다. “왜 독일에서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그리스도교 사회학을 전공했을까?” “어떻게 신설 마산교구 신출내기 주교가 2년 후엔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고 또 그 이듬해엔 당시 세계 최연소로 추기경에 임명됐을까?” 등 많은 대중들이 궁금해 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도 제시한다.
이 전기를 통해 되짚어 볼 수 있는 김 추기경의 대표적인 모습은 바로 대 사회적 활동과 발언들이다.
“서로에게 밥이 되어 주십시오.”
김 추기경이 남긴 대표적인 권고다.
1966년, 김 추기경은 새로 설립된 마산교구의 교구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가장 먼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실천 정신을 나타낼 수 있는 성구를 찾았다.
“주교로서 진정한 자세는 예수님처럼 세상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놓아야 한다고,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 온갖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성구를 생각하느라 머리를 싸맸다. 얼마 후, 예수님께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시고 몸을 나누어주시며 우리들의 ‘밥’이 되어주셨듯, 자신도 모든 이에게 먹히는 존재, 많은 이의 ‘밥’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여러분과 또한 많은 이들을 위하여’라는 경구를 사목 표어로 정했다.”(1권 287쪽 본문 중)
김 추기경은 가톨릭시보사(현 가톨릭신문) 사장으로 재직할 때에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내용과 의미를 그 누구보다 발 빠르고 깊이 있게 알린 주인공이었다.
1968년 한국 주교단에서도 막내였던 그가 대주교이자 서울대교구장이 됐을 때도 그는 “우리는 ‘너희들이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를 생활로써 증거해달라’고 하는 우리 사회의 요구를 명심하고, 이제 교회는 모든 것을 바쳐서 사회에 봉사하는 ‘세상 속 교회’가 되어야 한다”(1권 317쪽 본문 중) 고 강조했다.
특히 ‘가톨릭 액션’(가톨릭 운동)에 대한 관심이 김 추기경을 그리스도교 사회학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김 추기경은 사제 시절 피데스통신 기사를 통해 가톨릭 전통이 오래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가톨릭 액션’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톨릭 액션은 유럽의 청년, 노동자, 농민이 가톨릭의 깃발 아래 연합해서 자신들의 권익을 찾는 운동이었다. 그는 “이 운동이 활성화되면 신자들은 천주님의 사랑과 인간을 위한 희생을 더욱 이해하면서 신앙심이 깊어지고, 비신자들은 가톨릭에 호의를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천에 옮기기에 앞서 그리스도교 사회학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또한 전기는 부조리한 어떤 권력이나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고 맞서 목소리를 내고 약자들을 감싸 안았던 김 추기경 옆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예를 들어 ‘사회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주교단 공동성명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주교단 성명이었다. 1968년 당시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총재였던 김 추기경이 이른바 심도직물 사건을 계기로 노동력 착취와 부당해고 등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옹호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서 초안을 작성했다. 한국 주교단은 어떤 내용도 수정하지 않고 이 안을 공식 성명서로 채택했다. 전기는 이러한 과정들을 바로 눈앞에서 보듯이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사실 전달 위해 기록과 자료 분석
이충렬 작가는 ‘사실’ 전달을 위해 김 추기경의 동선과 생각, 독백은 물론 거의 모든 대화를 기록에서 찾아 인용하는 과정을 거쳤다. 전기는 역사적 평가나 저자의 판단을 곁들이는 평전과는 달리, 독자 스스로 주인공의 삶을 평가할 수 있도록 사실에 근거해 서술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일기는 물론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자료까지 다면적으로 찾아 대조하고 분석하는 과정까지 거칠 정도였다. 단 한 줄을 쓰기 위해 수백 장의 자료와 수백 권의 책을 독파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특히 1927년 창간된 가톨릭시보(가톨릭신문) 첫 호부터 내용을 꼼꼼히 읽고 분석해 김 추기경의 삶을 소개할 만한 단초들을 다수 찾아냈고, 그의 동선을 파악하고 주변 환경 등을 알기 위해 50여 년간의 주요 일간지와 잡지 서적까지 모두 뒤졌다. 미공개 개인앨범에서부터 각 교구와 단체의 내부 사진 자료를 찾아 다녔고, 주요 일간지 사진만도 1000여장 이상 열람하면서 김 추기경의 궤적을 따라다녔다.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각종 사진과 자료들은 이러한 노력 끝에 얻은 결실들이다.
덕분에 이 책은 추기경 김수환을 통해 20세기 역사의 격랑을 헤치고 나아간 한국 사회와 교회에 관해 서술, 전기 문학으로서도 손색없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전기 부록에서는 사진 화보도 볼 수 있다. 조부의 순교와 현재 생가로 알려진 옛 집 등과 관련해 ‘바로잡아야 할 사실’과 천주교 용어 해설도 부록으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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