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대리구 용인본당(주임 김부호 신부)은 5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지역과 함께 성장하고 복음을 나눠온 공동체이다.
본당의 시작이 된 용인공소는 양지본당 소속으로, 본당 설립을 준비할 당시 공소 신자는 여섯 가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공소가 위치한 김량장은 군청을 비롯한 경찰서와 각종 관공서가 모인 용인지역 행정의 중심이었기에 본당이 자리하기에는 적합했다.
양지와 용인의 신자들은 용인성당 부지를 확보하고 자발적으로 노력봉사해 1957년 첫 성당을 완공했다. 당시 붉은 벽돌로 지은 성당은 용인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성당이 있던 김량장 어디에서나 보였다. 시계가 귀하던 당시, 성당의 종소리는 인근 주민들에게 시각을 알리는 역할도 했다. 지금도 지역 사람들은 당시의 종소리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성당은 1958년 봉헌됐지만 양지본당 소속으로 있다가, 1959년 본당 설립을 인준받았다. 당시 본당 신자 수는 500여 명이었고, 30여 개 공소를 관할했다. 본당 설립은 지역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성당이 시장 한 가운데 있어 장이 열리면 방문하는 이가 많았고, 빠른 속도로 신자 수가 늘었다.
본당은 지역발전에도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해외원조를 바탕으로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지역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본당의 몫이었다. 특히 계곡의 물줄기를 끌어 만드는 소수력발전사업에도 참여, 이 사업을 계기로 많은 입교자가 생겨나기도 했다. 미군과 미국가톨릭복지협의회의 원조를 이끌어 지역에 교량을 설치하기도 했다.
성당이 시장 안에 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면에서는 장점이었지만, 사목활동에는 장애가 되기도 했다. 이에 본당은 1983년 지금의 성당 자리에 새 성당을 세웠다.
하지만 1994년 화재로 성당 내부가 전소되고 말았다. 성당 내부가 모두 타버렸을 때, 단지 감실만은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성체를 지켜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화재의 상처를 이겨낸 본당은 꾸준히 성장해 송전·천리·모현·삼가동본당 등을 분가시켰다.
교육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던 본당은 1962년 효신실업중학교를 설립,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기술교육을 실시했다. 운영의 어려움으로 10여 년 만에 폐쇄되긴 했지만, 이 학교자리에는 이후 인보성체수도회가 진출해 성체유치원을 운영하는 계기가 됐다. 2003년에는 본당 부설 성모어린이집을 개원해 지금까지 유아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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