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대에서 한 알의 밀알 같은 존재입니다.”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제1항공여단 하남기지 정비중대장 오정훈(알베르토·44) 소령을 두고 오 소령의 직속상관인 대대장 김기두 중령이 첫 마디로 꺼낸 말이다. 개신교회 집사인 김 중령이 보기에도 오 소령이 부대 신앙전력 강화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김 중령은 “우리 부대 천주교 신자 장병들이 부대 내에서 정기적으로 미사 봉헌을 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오 소령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성당 없는 부대에 미사 개설
항작사 제1여단 하남기지에는 개신교회 건물만 있을 뿐 천주교 종교시설은 없다. 그러나 매월 4주차 수요일 오후 6시 대대 회의실에서 군종교구 비승본당 주임 이정희 신부 주례로 간부들이 정기적으로 미사를 봉헌한다. 병사 20명 정도도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 매월 2주차 화요일 오후 8시에는 군종교구 화랑대본당 주임 김창중 신부가 주례하는 미사에 병사 30명 내외가 꾸준히 나온다. 간부 미사는 2014년 5월 성모성월을 맞아 시작했고 병사 미사는 1년이 지난 지난해 5월 첫발을 내디뎠다.
오 소령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돌이켜 보면 내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은 하느님이 이뤄주셨다”고 거듭 말했다.
군부대에서 신앙생활 해본 장병들은 군종신부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정기적인 미사를 개설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인근 군본당 사제 초청에서부터 부대 내 미사 장소 마련, 성당이 아닌 공간에 제대를 설치하고 성가 반주를 준비하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사에 참례하는 장병들에게 미사 통상문과 미사 당일의 독서와 전례문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일도 만만치 않게 손이 가는 작업이다. 오 소령은 군종병 역할을 하는 병사도 없이 혼자 항작사 하남기지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됐다. 한 알의 밀알은 이제 10배, 20배의 열매를 맺고 있다.
가족에게 먼저 한 알의 밀알 되다
1995년 7월 1일 육군 소위로 임관해 올해 21년째 군생활을 하고 있는 오 소령은 “제가 천주교 신앙을 처음 접하게 된 내력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개신교회 신자여서 저도 초등학교 때는 개신교회를 다녔습니다. 불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중고등학교에 배정돼 6년 동안은 필수 과정으로 불교 교리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1994년 9월 대학 4학년 때 학사장교 입대를 1년 앞두고 집 근처 광주 원동성당에 제 발로 찾아가 예비신자 교리를 받았습니다. 하느님이 천주교로 저를 이끄신 것 같습니다.”
오 소령은 원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받던 중 1995년 4월 경북 영천 제3사관학교에 입교해 성 바실리오성당에서 그해 6월 세례를 받았다. 오 소령의 부모도 그 무렵 오 소령도 모르는 사이에 천주교 신자가 됐다. 2007년 1월 오 소령과 결혼한 비신자 아내도 이듬해 12월 역시 남편이 모르는 사이 천주교 신자가 돼 있었다. 오 소령은 가족에게 먼저 한 알의 밀알이 됐던 것이다.
이창하 대령과의 운명적 만남
군생활 21년 동안 제주도를 빼고 23번이나 전국에 이사를 다니면서 2011년 6월 항작사 하남기지 여단장 이창하(바오로) 대령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오 소령의 신앙에 큰 전기가 됐다. 이 대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아내가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시작했고 오 소령도 2011년 말 서울 고덕동본당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 협조단원에 이어 “나도 레지오 활동을 하니 오 소령도 행동단원이 돼라”는 이 대령의 권유로 이듬해 9월 행동단원이 됐다. 2011~2013년 2년 동안은 새벽미사가 있는 민간 본당 3군데를 찾아다니며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미사를 봉헌할 정도로 오 소령의 신앙은 뜨겁게 타올랐다.
그러던 중 2013년 4월 대구 제5군수지원사령부에 부임한 첫날 “부대 공소회장을 맡아 달라”는 전임 공소회장의 전화를 받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했다. 오 소령은 “5군지사 공소회장 경험은 하남기지에 미사를 개설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회상했다.
“미사 준비 다 해주시는데 당연히 가야죠”
2014년 1월 항작사 하남기지로 다시 돌아온 오 소령은 간부들이 먼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모범을 보여야 병사들도 신앙으로 이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부대 내 간부 미사 개설에 착수했다. 하남기지에서 승용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이천 항작사령부 비승본당에 찾아가 당시 주임이던 이효석 신부(현 국군중앙본당 주임)에게 하남기지 미사 주례를 요청했고 이 신부는 “미사 준비를 다 해주시는데 당연히 가야지요”라고 화답했다.
오 소령은 간부 미사 개설 이듬해 병사 미사를 개설한 것에 대해 “두 가지가 맞아 떨어졌다”며 “병사들의 신앙생활을 활성화시킨다는 측면과 고덕동본당 ‘평화의 모후’ 단원들이 병사 미사 준비와 간식 후원으로 레지오 봉사활동을 한다는 측면이 모두 충족됐다”고 설명했다.
항작사 하남기지 장병들의 신앙에 한 알의 밀알이 됐던 오 소령은 내년 12월 군복을 벗는다. “제가 부대를 떠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저를 대신할 신앙인을 세워주실 것입니다.”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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