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 발 다 부서졌어. 나 9시까지 꼭 데리러 와야 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딸이 난생처음 대형마트의 초콜릿 매장에서 알바를 하며 저에게 보낸 카톡입니다. 딸은 대학 입학 전까지의 여유로운 시간에 알바를 결심했습니다.
저는 “사람 사는 것도 경험하고 돈도 벌어봐라”라면서 허락을 했습니다. 그러나 낮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 식사시간 외에는 종일 서서 일을 했으니, 발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팠을 겁니다.
저와 아내는 집에서 어리광만 부리던 딸이 ‘어떻게 초콜릿을 팔고 있을까’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일찍 마트에 도착해 딸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았습니다. 딸은 매장에서 나눠 준 유니폼을 입고, 긴 머리는 뒤로 쪽 짓고, 위생 마스크를 하고, 열심히 손님들에게 제품을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집에서 어린애처럼 행동하던 모습과 사뭇 달라진 딸을 대견스러워 하면서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습니다.
저도 군에 오기 전까지 학교에 다니며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사내라면 도둑질 빼고는 어떤 일이든 다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혹독하게 저를 단련(?)시켰습니다. 그리고 농사일 틈틈이 제방공사나 남의 일을 해주고 돈을 벌어 용돈으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지금의 알바를 한 것입니다.
그 당시 사진을 보면 덥수룩한 머리, 불쑥 튀어나온 광대뼈, 비쩍 마른 몸매인 저를 보게 됩니다. 그때는 아버지를 참 많이 원망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고생이 제 인생에 커다란 자산이 됐습니다. 저에게 ‘노동의 소중함과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와 때론 숭고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한, 산교육의 장(場)이었습니다.
당나라 고승 백장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고 말하며 죽는 날까지 일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 제 주변을 보면 부모에 기대 사는 ‘캥거루족’이 의외로 많음을 보고 놀랍니다. 한창 일할 나이임에도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젊은이를 볼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0-12)
딸은 며칠 간의 알바를 마치고 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딸은 알바를 하며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서 평을 해 주었습니다. 친절한 사람, 태클 거는 사람, 주변을 맴돈 사람, 치근거린 사람 등. 그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몸은 힘들었겠지만 딸이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은 모두 딸에게는 인생의 선생님이었을 것입니다. 아멘!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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