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순수한 시정신(詩精神)으로 군더더기 없는 ‘밀핵시’(密核時)를 추구했던 고(故) 성찬경 시인(요한 사도·1930~2013).
생전 그의 집엔 나사 등 길 위에서 주워온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시인은 그런 집을 ‘물질 고아원’이라 불렀다. 버려진 물질들을 하나같이 주인(=부모) 없는 고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은 ‘고아원장’을 자처했다. 고아들은 시인의 손끝에서 뚝딱 뚝딱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졌다. 은수저가 십자가 같은 성물로 변했고 ‘시바스 리갈’ 양주 병 박스는 기묘하게 접히고 펼쳐져 전등갓이 됐다. 90년대 초, 이 물질 고아들이 하나 둘 쌓여진 서울 응암동 집에 시인은 ‘응암동 물질고아원’ 팻말을 붙였다.
시인이며 동시에 융합적 예술가였던 고 성찬경 시인의 면모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2월 26일~3월 9일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열린 성찬경 추모전 ‘응암동 물질 고아원’은 이러한 물질 고아들이 세상 속에 처음 선보인 자리였다.
드로잉, 회화, 조각, 실용품, 디자인 등 미술관 1~2층에 나눠 전시된 150여 작품들은 생전에 시인이 보였던 시 세계와는 다른, 다방면의 시각적 예술 세계를 드러냈다.
빵 봉투 끈으로 만든 ‘봉황’, 나사, 철사, 파이프, 철조각, 통나무조각으로 만든 ‘풍차와 싸우는 돈키호테’, 오토바이, 선풍기, 철제의자, 부속, 나사 등을 사용한 ‘좌상’ 등 기발하면서도 창의성 넘치는 작품들이 공간을 채웠다. 생전에 사용하던 작업실 책상도 그대로 재현됐다. 스탠드, 의자, 독서대 등에서 직접 손보고 닦아낸 시인의 손길이 묻어 나왔다.
이번 전시는 3주기를 맞으며 가족과 지인들이 뜻을 모아 마련했다.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 ‘생활 속 예술’을 펼쳤던 고인의 또 다른 됨됨이를 나누고자 하는 취지가 담겨있다.
“일상은 아버지에 의해 예술이 되었다”고 회고한 장남 성기완(임마누엘·시인·계원예대 교수)씨는 “분리수거나 재활용이라는 개념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아버지는 주워온 나사를 잘 닦고 만져 멋지게 재생시키셨다”며 “이미 40년 전에 스스로 재활용을 실천한 분이셨다”고 말했다.
시인은 ‘인권’을 한창 이야기하던 시대에 ‘물권’ 이라는 신조어를 제안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말하는 최근의 주장들이 새롭지 않다. 이미 오래 전 나사 수집 등으로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했던 시인에게 공감했던 탓이다.
전시회장에도 소개됐던 ‘유쾌하게 빌었다’ 제목의 시는 이런 시인의 모습을 잘 드러내 준다.
‘파쇠 긁어모아 새사람(鳥人) 만들 때/ 산소땜하는 불 들여다보며/ 그 퍼런 불꽃에서 태어날 날개가/ 날 불가지의 공간을 그려보며/ 유쾌하게 빌었다.’
“일관된 방식으로 올곧게 살아가려 노력한 남편의 편린들이 모아져 기쁘다” 고 말한 부인 이명환(사도요한나·수필가·서울 응암동본당)씨는 “예술적 동력 이상으로 신앙이 큰 계기가 되었던 시인의 자리들을 생각하는 기회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인의 3주기를 기념하는 자리는 4월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4층에서 ‘성찬경의 시세계’ 문학 심포지엄으로 이어진다. 심포지엄에서는 ‘성찬경 시세계 연구’, ‘성찬경 시에 나타난 시형식의 실험연구’, ‘시집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의 신학적 전환’ 등 논문이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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