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조규만 주교)는 병인순교 150주년과 한불수호조약 130주년을 기념해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특별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3월 2일부터 11일까지 열흘간 진행된 순례는 조선대목구 초대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 오드레삭부터 딘느의 샤스탕 신부 생가까지 프랑스 선교사 6명의 신앙여정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열띤 환영 받은 마리냔느
순례단은 3월 2일 파리를 경유해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이유에 도착한 뒤 이튿날 성 앵베르 주교의 고향 마리냔느를 찾았다. 순례 첫 미사는 성 앵베르 기념 성당에서 10여 명의 현지 신자들과 함께 한국어로 봉헌했다.
이어 순례단은 브리카르 지역에 있는 앵베르 주교의 생가를 방문했다. 생가에는 앵베르 성인의 생가 터라는 기념판과 함께 성인이 순교한 새남터의 흙이 보관돼 있다. 1796년 태어난 성인은 1년 정도 생가에서 살았고 이후 인근 칼라 지역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한국 순례단 방문은 현지 신자들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순례단이 도착하자 현지 신자들은 물론 마리냔느 관광청에서도 관계자들이 나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관광청측은 마리냔느가 조그만 도시지만 앵베르 주교와 같은 위대한 성인을 배출해 자랑스럽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리냔느 지역 30여개 본당은 ‘성 앵베르 기념사업회’를 조직해 활발하게 성인에 대한 현양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성 앵베르 기념사업회 장-프랑수와 모렐 회장은 기념성당, 생가, 성인이 사제수품 후 첫 미사를 봉헌한 것으로 알려진 카브리에 성당 등을 순례단에게 소개했다.
성 샤스탕 신부 자취 서린 딘느
3월 4일에는 성 샤스탕 신부의 생가 방문을 진행했다. 샤스탕 신부는 1804년 딘느 지역의 마르쿠 마을에서 태어났다. 생가에는 샤스탕 신부의 막내 여동생의 후손이 아직도 살고 있다.
이 집 주인인 피에르 마르탱 씨는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할아버지 중에 한국에서 순교한 신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전했다. 그는 “집에 기념판도 있고 해서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릴 적에는 이와 관련해서 찾아오는 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샤스탕 신부님의 시성 후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를 포함해 나이 든 신부와 수녀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이제는 간간히 오는 한국 순례단 말고는 찾아오는 이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연이어 찾은 마르쿠성당은 샤스탕 신부가 세례를 받고 사제수품 뒤 첫 미사를 드린 곳이다. 마르쿠본당 크리스티앙 비앙 신부는 “한국에서 샤스탕 신부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이렇게 한국 신자들이 찾아오는 것이 놀랍고 존경스럽다”고 전했다. 하지만 비앙 신부는 “한국 신자들은 샤스탕 신부에 관해 자부심을 갖고 이야기하는 반면 프랑스 신자들은 샤스탕 신부에 관해 잘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순례단에 큰 선물 준 퀴퀴홍
이어 순례단의 발걸음은 조선대목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가 태어나고 자란 퀴퀴홍으로 향했다. 페레올 주교가 세례를 받은 퀴퀴홍 성당에서는 1961년부터 17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태요한 신부(Olivier Tellier)가 순례단을 맞이해 그 의미를 더했다. 태 신부는 대전교구 대천성당과 금사울 성당에서도 사목했었다.
이날 퀴퀴홍 신자들은 한국 순례단에게 큰 선물도 안겨줬다. 바로 페레올 주교의 생가를 확인해준 것. 이 지역 역사가인 르네 볼로(Rene Volot)씨는 페레올 주교의 집안이 푸줏간을 운영한 점에 주목해 관련 사료들을 종합 연구한 끝에 생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거 푸줏간이었던 이 장소에는 현재 마을 주민이 거주하고 있지만, 한쪽 벽에서 과거 푸줏간 입구였던 것으로 보이는 문을 확인할 수 있다.
포도주 향기 가득한 오드레삭
조선대목구 초대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는 끝내 조선에 들어오지 못하고 중국에서 선종했다. 당시 태국 샴 교구 부주교였던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1년 조선대목구 설립과 함께 초대대목구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비록 조선에 입국하지 못했지만 교구 설정과 선교사 파견을 주도하는 큰 역할을 했다.
순례단은 3월 5일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인 오드레삭을 찾았다. 생가는 파리에 거주하는 한 사람이 소유 중이었지만, 한쪽 벽면에는 기념판을 걸어놓고 있었다. 특히 오드레삭 부스케 디디에 시장은 오드레삭 성당에서 현지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한 순례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과거에는 관광객이나 순례객이 찾아오면 인근 와이너리를 소개하느라고 바빴는데, 지금은 브뤼기에르 주교에 대해 소개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국인 선교사제 활동하는 아미앵
프랑스 순례 중 루르드 성모 발현 성지에서 하루를 머문 순례단은 3월 8일 성 다블뤼 주교의 고향 아미앵을 방문했다. 아미앵 대성당에는 서울대교구 김지훈 신부가 선교사제로 파견돼 보좌신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순례단은 김 신부의 안내로 다블뤼 주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던 아미앵 대성당 곳곳과 다블뤼 주교가 세례를 받은 인근 생 류 성당 등을 돌아봤다. 김 신부는 순례 중 “이곳의 사제가 부족해 교회가 문을 닫는 모습을 보면서 프랑스 선교사제로 자원하게 됐다”면서 “다블뤼 주교님의 고향과 세례 장소 등을 제대로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주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일 것”이라고 말했다.
베르뇌 주교 현양 샤토 뒤 르와르
성 베르뇌 주교는 1814년 프랑스 르망교구 샤토 뒤 르와르에서 태어나 1837년 사제품을 받았다. 고향에는 그가 세례를 받은 성당과 생가 터가 있다. 안타깝게도 그의 생가는 화재로 소실됐고, 그 자리에는 새로 지은 주택이 들어서 있다.
다른 프랑스 선교사들에 비해 베르뇌 주교의 현양사업은 활발히 진행되는 편이다. 샤토 뒤 르와르 본당 브루노 델라로쉐 신부는 2012년 부임 후 베르뇌 주교의 삶과 영성에 관해 찾고 알리는 활동을 다방면으로 펼치고 있다. 2014년에는 베르뇌 주교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행사를 열었고, 역사학자들을 초대해 관련 역사를 공부하는 컨퍼런스를 마련하기도 했다.
델라로쉐 신부는 “쉽지 않지만 베르뇌 주교 관련 기록을 열심히 찾고 있다”면서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하나씩 일궈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르망교구도 이 사업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본당에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최진성 신부가 파견돼 활동 중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