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가기 위해 차 뒷좌석에 올라 운전병을 보았는데 섬뜩 놀랐습니다. 걷어 올린 전투복 사이로 팔뚝에 커다란 문신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뭐 이런 운전병을 보냈어’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2014년 여름, 운전병인 K일병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저는 직책상 항공부대에 대한 안전점검을 위해 출장을 자주 다닙니다. 그날은 당일 출장이었는데 K일병이 운전병으로 배정된 것입니다.
차는 목적지를 향해 이내 출발했고, 저는 K일병에게 조심스럽게 “고향은 어디니? 운전은 얼마나 했니?” 등을 물었습니다. K일병은 일병답지 않게 어눌하지만 질문을 잘 받아 넘겼습니다. 그래서 “팔뚝의 문신은 뭐냐”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K일병은 “고등학교 때 사귀던 여학생의 꼬임에 문신을 새겼는데 후회하고 있습니다. 돈 벌어서 지울 겁니다. 다른 분들은 저를 싫어하는데 실장님은 친절히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K일병을 전담 운전병으로 지정해서 전국을 누볐습니다.
K일병은 사실 서글서글하고 예의도 바르며 성실했지만, 문신으로 인한 나쁜 선입견 때문에 군생활이 위축되고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겉모습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자기만의 색안경에 갇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에서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라고 말했습니다.
편견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편견의 틀은 깨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인 편견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지휘관 인수인계 시, 사람에 대해서만은 전임자로부터 인수를 거부했고, 후임자에게는 인계하지 않았습니다. 부하를 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한 점의 편견 없이 대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돈이 많은 사람이나 없는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건강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무시하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서 편견 없는 세상을 만들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이 곧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K일병이 병장을 달고 전역하는 날, 제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그는 직접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 한 통과 책 한 권을 수줍게 내밀며 “실장님 덕분에 군생활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면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편지와 책을 받아 든 저는 K병장을 안아주며 “K병장! 그동안 안전운행 해줘서 고맙다. 잘 살아!”하고는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 저에게 씌워진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벗겨 주시어 순수한 아이처럼 맑고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해 주십시오. 아멘!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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